어느 정도 성장한 기업 상당수는 사회 공헌 활동을 합니다. 기부, 자원봉사, 무상 제품 제공 등 다양하죠. 회사 성과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활동은 기업의 유일한 목적이 이윤 추구가 아니라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회사 이미지 제고를 위해 사회 공헌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죠. 상대적으로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사회 공헌 활동이 활발하지 않습니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은 대부분 살아남는 것도 버겁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회 공헌 활동에 ‘진심’인 스타트업들이 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국내 스타트업 업계의 눈에 띄는 사회 공헌 활동을 소개합니다.

블라인드만의 사회 공헌 방식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서비스 블라인드를 운영하는 팀블라인드는 최근 치약과 칫솔을 팔기 시작했다. 내년 블라인드 출시 10주년을 맞아 마련한 이벤트성 행사다. 문성욱 팀블라인드 대표의 설명은 이렇다.

“그동안 블라인드를 통해 기업 문화를 바꾼 기업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해당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업자였던 덕분에 이들 기업의 변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볼 수 있는 기회 많았죠. 우리가 블라인드라는 서비스를 만들며 목격한 모든 거대한 변화는 모두 한두 사람의 목소리에서 시작됐습니다. ‘말해도 바뀌지 않을 거야’라는 무기력과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이죠. ‘우리가 봤던 이런 경험을 다른 직장인들과 같이 나눈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필크(기부 프로젝트) 고객들이 자신이 쓸 치약과 칫솔을 사면 다른 직장인과 그 가족들에게 기부됩니다. 목소리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이죠. 이런 작은 경험이 쌓이면 직장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팀블라인드가 판매하는 치약과 칫솔. 팀블라인드 제공
팀블라인드가 판매하는 치약과 칫솔. 팀블라인드 제공
팀블라인드가 이번에 판매하는 치약과 칫솔에는 블라인드의 슬로건인 ‘Your voice matters’(당신의 목소리는 중요하다)를 담았다. 입 모양의 디자인을 강조했다. 팀블라인드의 유지희 한국 필크 사업 총괄은 치약과 칫솔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블라인드의 슬로건을 직관적으로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먼저 있었다”라며 “‘목소리’라는 블라인드의 핵심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동시에 직장인 누구나 사용하는 아이템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팀블라이드는 해당 제품을 판매한 수익에서 제작 실비를 제외한 전액을 한국생명희망존중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기부금은 이 재단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꿈자람 사업'에 쓰인다. '꿈자람 사업'은 가족의 자살로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청소년들에게 학비를 지원해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유 총괄은 “직장에서 각종 어려움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직장인의 자녀를 생각해 한국생명희망존중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장애인선수단 운영하는 엔픽셀

엔픽셀 장애인 선수단의 이원태 선수가 지난 10월 제 42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곤봉 던지기 종목에 참가해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 모습. 엔픽셀 제공
엔픽셀 장애인 선수단의 이원태 선수가 지난 10월 제 42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곤봉 던지기 종목에 참가해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 모습. 엔픽셀 제공
모바일 게임 '그랑사가'로 유명한 게임 스타트업 엔픽셀은 장애인선수단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내 스타트업 처음으로 장애인선수단을 창단했다. 엑핀셀은 올해 창업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다. 게임업계에서도 드문 경우다. 국내에서는 엔픽셀과 넷마블 두 곳만 장애인선수단을 운영 중이다. 엔픽셀은 장애인 선수의 사회 진출 등을 돕기 위해 장애인 선수단을 창단했다고 설명했다. 엔픽셀 관계자는 “장애인에게 운동은 무기력해지기 쉬운 마음과 신체를 단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전용 체육시설이 부족하고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낮아 개선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사례가 거의 없어서 엔픽셀은 ‘스타트업이 왜 장애인 선수단 창단이냐’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엔픽셀 관계자는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 운동은 그야말로 '도전'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한계를 넘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흘리는 땀방울과 그로 인해 얻는 성취감. 우리는 이를 ‘스포츠 정신’이라 말하죠. 장애인 선수에게 ‘스포츠’는 무기력하기 쉬운 마음과 신체적인 상태 등을 극복하고 기록 경신을 통해 ‘성장’하고 ‘도전’하는 원동력입니다. 엔픽셀 역시 글로벌 게임사로 발돋움하고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기에 선수들의 도전에 대한 마음에 공감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죠”라고 설명했다.

엔픽셀은 장애인 선수단에게 회사 정규직과 같은 복리후생을 제공하고 있다. 급여는 물론 훈련 용품, 본인과 부모님까지 지원하는 상해보험, 건강검진, 200만원 상당의 복지 포인트 등 정규직과 동일한 다양한 혜택을 준다. 엔픽셀 장애인선수단 육상 종목의 이원태 선수는 “장애를 갖게 된 뒤 직장을 통한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웠는데 엔픽셀 장애인선수단을 통해 그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선수단의 성과도 좋다. 엔픽셀 장애인선수단은 울산장애인체육회 소속 선수 6인(수영 5명, 육상 1명)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제 41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수영과 육상(필드) 종목에서 총 9개의 메달을 땄다. 올해 10월에 열린 ‘제 42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애서는 선수들이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를 목에 걸었다. 육상 종목에 참가한 이원태 선수는 원반 던지기 경기에서 8.87m으로 한국 신기록을 경신했다. 엔픽셀 관계자는 “선수들의 훈련 모습이나 경기 결과는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주특기'로 사회 공헌 활동

자사의 핵심 사업을 살려 사회 공헌 활동에 참여하는 스타트업도 늘고 있다. '웨이스트 테크' 스타트업 수퍼빈은 최근 안양시자원봉사센터와 지역사회 주민을 위한 ‘이동 세탁차’ 후원 협약식을 체결했다. 수퍼빈은 안양시자원봉사센터가 추진하는 '2023 씽씽 달리는 싱그러운 세탁차 사업'에 필요한 이동세탁차를 후원할 예정이다. 이번 후원은 최근 폭우 등 구도심 수해 복구 과정에서 도시 내 취약계층을 위한 이동 세탁차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이뤄졌다. 앞서 안양시는 수퍼빈과 투명 페트병 등 재활용품을 대량으로 수집하고 판매할 수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 사업에도 협업하고 있다.

수퍼빈의 사회 공헌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북 부안여고 학생들을 위해 순환자원 회수로봇 네프론을 무상으로 기증했다. 부산, 성남, 대구 등 각 지역의 유기동물 보호단체들과 꾸준히 협업 중이다. 배달의민족, 한국환경공단 등과도 음식 포장재 모으기 등 친환경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기업이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힘쓸 수 있다면 우리 다음 세대에게 어제보다 더 나은 사회와 문화를 물려줄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바비톡이 지원한 화상 입은 소방관 지원 전시회의 박지숙 작가의 작품. 바비톡 제공
바비톡이 지원한 화상 입은 소방관 지원 전시회의 박지숙 작가의 작품. 바비톡 제공
미용의료 정보 제공업체 바비톡은 화상을 입은 소방관을 돕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소방관들의 처우 및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히어로 패턴’ 캠페인을 실시했다. 소방관 화상 흉터 치료 및 피부 재건술 지원, 관련 오프라인 전시회, 캠페인 영상 제작, 캠페인 응원페이지 개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바비톡 관계자는 “국내 소방관 10명 중 9명이 화상 사고를 경험하고 있지만 상처 치료 이후 흉터 치료 및 피부 재건술은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되는 등 정부의 지원 대책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바비톡은 소방관들의 흉터 치료를 위해 총 1억원을 소방동우회에 전달했다.

소방관들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화상 흉터를 주제로 한 전시회도 개최했다. 전시에는 서울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박지숙 교수와 박현성 사진작가가 참여했다. 박지숙 교수는 소방관들의 화상 흉터를 모티브로 한 강렬한 패턴을 통해 예술작품을 표현했다. 박현성 작가는 소방관들의 흉터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 전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는 평가다.

바비톡은 캠페인 응원페이지도 별도 개설했다. 해당 사이트의 ‘응원하기’ 버튼을 누르면 1건 당 2000원이 소방관들에게 기부됐다. 약 6만명의 이용자들이 기부에 참여해 목표금액 1억원을 달성했다. 앞서 바비톡은 지난해 10월 항암치료 과정에서 갑작스러운 외모 변화 등으로 고통받는 암환우들의 가발 구입비를 지원하기 위해 ‘퍼플라이 마라톤 기부런’을 개최하기도 했다. 참가비로 조성된 기부금 2000만원 전액을 강동경희대학교병원에 전달했다.
케어닥은 최근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과 지역 어르신을 돕기로 했다.  박재병 케어닥 대표(왼쪽)와 이아진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협약식을 가졌다.
케어닥은 최근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과 지역 어르신을 돕기로 했다. 박재병 케어닥 대표(왼쪽)와 이아진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협약식을 가졌다.
시니어 돌봄 플랫폼업체 케어닥은 지난 10월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과 시니어 돌봄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은 1921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사회복지관이다. 케어닥은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과 손을 잡고 돌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서울 강남구 지역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자사의 관련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케어닥은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LH강남3단지 태화이웃사이복지센터’와 연계해 강남구 독거노인 중 희망 가구를 모집해 케어닥 ‘생활돌봄 서비스’를 무상 지원했다. 돌봄 활동은 케어닥 본사 직원 및 케어코디(요양보호사, 간병인)가 2인 1조로 한 팀이 돼 진행했다. 관련 지원이 필요한 어르신 가정에 월 2회 직접 방문해 주거지 청소부터 냉장고 정리, 약 정리, 산책 등의 주거환경관리를 지원했다. 박재병 케어닥 대표는 “더 많은 어르신에게도 케어닥의 전문적인 돌봄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김주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