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인 툴젠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의 선발명자를 가리는 미국 특허 저촉심사(Interference)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미국 특허청 산하 특허심판원(PTAB)이 진행한 저촉심사의 첫 단계인 '모션 페이즈(Motion Phase)'에서 '시니어 파티(Senior Party)' 지위를 확정지으면서다.

툴젠은 "한국시간으로 29일 이같은 내용을 통보받았다"고 30일 밝혔다. 저촉심사 대상인 UC버클리와 브로드연구소는 '주니어 파티(Junior Party)'로 정해졌다. 이들은 시니어 파티 지위를 얻은 툴젠을 상대로 특허심판원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선발명을 증명해야 한다.

UC버클리는 2020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가 속해있다. 브로드연구소는 하버드대와 MIT가 세운 연구기관이다.

UC버클리의 기술은 나스닥 상장사인 인텔리아 테라퓨틱스와 크리스퍼 테라퓨틱스가, 브로드연구소의 기술은 에디타스가 이전받아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인텔리아는 42억달러, 에디타스는 8억3600만달러의 기업가치를 나스닥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툴젠이 UC버클리, 브로드연구소와 진행 중인 저촉심사는 하나의 발명을 두고 2개 이상의 특허가 경합할 때 최초 발명자가 누군지 판단하는 행정 절차다. 결과에 따라 특허 사용료를 누가 누구에게 지불해야 하는지가 갈린다.

미국은 가장 먼저 기술을 발명한 사람을 특허권자로 인정하는 선발명주의를 이어오다, 2013년 3월 선출원주의로 특허법을 개정했다.

툴젠과 UC버클리, 브로드연구소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관련 기술은 법 개정 이전인 2012년 개발됐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저촉심사는 선출원주의로 바뀌기 전 선발명주의 때 출원된 특허 등록을 위한 절차다.

UC버클리와 브로드연구소 간 오랜 분쟁과 별개로 툴젠과 UC버클리, 그리고 툴젠과 브로드연구소 간의 분쟁은 2020년 12월 시작했다. UC버클리와 브로드연구소 간 분쟁에 툴젠이 가세한 것이다.

앞서 진행된 UC버클리와 브로드연구소 간의 저촉심사에서는 브로드연구소가 승리했다. 이에 UC버클리가 항소해 절차가 진행 중이다. 여기서 브로드연구소의 승리가 확정되면, 현재 툴젠이 UC버클리와 벌이고 있는 저촉심사는 자동 폐기된다는 게 툴젠의 설명이다.

툴젠은 선출원 기준에 따라 시니어 파티를 우선 배정받아 저촉심사 모션 페이즈를 시작했다. 출원일 기준으로는 툴젠이 가장 앞서 있어서다. 툴젠 관계자는 "저촉심사에서 선발명에 대한 입증 책임은 주니어 파티에 있다"고 설명했다.

시니어 파티 지위 유지가 최종 저촉심사 결과로 이어지는 '프라이어리티 페이즈(Priority Phase)'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툴젠은 미국 특허청 통계를 인용해 "시니어 파티가 선발명자로 인정될 확률은 75%"라고 했다. 앞서 진행된 UC버클리와 브로드연구소 간 저촉심사에서도 시니어 파티였던 브로드연구소가 이겼다.

툴젠은 프라이어리티 페이즈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최종 저촉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막대한 소송 비용 때문이다.

적지 않는 소송 비용이 지출되고 있어 툴젠도 합의 시도에 소극적이지 않은 분위기다. 툴젠은 지난해 소송 비용으로 83억원 가까이 지출했다.

툴젠은 특허 저촉심사에서 이길 가능성이 커진 만큼, 향후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기술료 합의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특허 수익 규모에 대해 언급할 단계는 아니다"며 "원천 특허를 바탕으로 특허수익 사업화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툴젠은 최근 변호사와 변리사 등으로 구성된 8명 규모의 지적재산권(IP) 사업본부를 꾸렸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