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어드 사이언스가 유럽종양학회(ESMO)를 앞두고 항체약물접합체(ADC) 유방암 치료제 ‘트로델비’(성분명 사시투주맙 고비테칸)의 새로운 임상 결과를 공개했다.

이전까지 경쟁약물 ‘엔허투’에 비해 효능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던 호르몬수용체(HR) 양성, 인간표피성장인자 수용체2(HER2) 음성 유방암에 대한 긍정적인 데이터가 공개되면서 업계에서는 엔허투와의 경쟁구도가 다시 살아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길리어드는 7일(미국 시간) HR 양성·HER2 음성 유방암 환자 54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3상 연구(TROPiCS-02)의 결과를 발표했다. 트로델비를 투약한 환자군의 전체생존기간 중앙값(mOS)은 대조군인 의료진이 선택한 화학요법(TPC)을 받은 환자의 11.2개월 대비 3.2개월 증가한 14.4개월을 기록했다. 회사 측은 트로델비가 환자들의 사망 위험을 21% 감소시킨 것으로 평가했다. 길리어드는 이같은 내용을 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럽종양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업계는 트로델비의 이번 임상 결과가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공개한 임상 결과에선 대조군과 실험군 간 OS의 차이가 12.3개월 대 13.9개월로 차이가 1.6개월에 불과해 통계적 유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데이터를 모으는 기간이 길어지고 추적기간 동안 사망하는 환자가 늘어나면서 각 군간 OS 값에 차이가 벌어졌다.

대조군과 실험군간 OS 비교는 TROPiCS-02의 2차 평가지표다. 1차 평가지표인 무진행생존기간(PFS)은 올 6월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에서 공개했다. 당시 공개한 PFS는 대조군(TPC) 4개월 대비 1.5개월 긴 5.5개월로, 길리어드 측은 통계적 유의성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길리어드는 이같은 TROPiCS-02의 임상결과를 근거로 HR 양성·HER2 음성 환자 치료를 위한 바이오의약품 품목허가신청서(BLA)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했다. 승인 시 먼저 허가당국의 승인을 받은 엔허투와 정면으로 맞붙게 된다. FDA는 지난 7월 HER2 저발현, HR 양성 혹은 음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엔허투를 승인했다.

HR 양성·HER2 음성 유방암은 유방암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암이다. 새롭게 진단받는 유방암 환자 중 70%가 해당된다. 트로델비는 2020년 삼중음성유방암을 적응증으로 FDA의 승인을 받았다. 삼중음성유방암은 호르몬수용체(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호르몬 수용체)와 HER2 발현이 모두 음성인 암으로 전체 유방암 중 10~15%를 차지한다. FDA 이번 적응증을 승인하면 트로델비는 좀 더 큰 시장을 조준할 수 있게 된다. 트로델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방암 환자도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업계의 관심은 트로델비와 엔허투의 효능 비교에 쏠리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HER2 발현이 낮은 하위 그룹에 대한 임상 결과다. HR이 양성이면서 HER2 발현이 낮은 환자군에 대해 길리어드는 트로델비가 사망 위험을 42% 줄였다고 밝혔다. 엔허투는 최근 임상 ‘DESTINY-Breast04’에서 같은 환자군을 대상으로 사망 위험을 49% 낮췄다.

하지만 이 결과를 일대 일로 비교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트로델비의 임상에 참여한 환자들이 엔허투 임상 대비 더 다양한 치료요법을 시도했으며 이에 불응한 환자들이었다. 트로델비 임상에 참여한 환자들이 더 치료가 까다로운 상태였다는 뜻이다.

길리어드 관계자는 “트로델비가 HER2 저발현 환자들을 대상으로 엔허투가 보여준 효능만큼을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