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발사비용, 美의 20배…이젠 기업이 '로켓 재사용' 주도해야
국산 기술로 설계·제작한 한국 첫 발사체 ‘누리호’의 성공으로 한국 우주산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에 이어 세계 일곱 번째로 우주 발사체 개발에 성공한 만큼 우주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한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2일 “2027년 이후 누리호 상업 발사가 가능하도록 별도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주도하던 국내 우주개발 사업이 ‘민간 산업’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항공우주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고도화 사업 시작

누리호 발사비용, 美의 20배…이젠 기업이 '로켓 재사용' 주도해야
누리호 성공에 따라 우주로 물자와 인력을 운반할 수 있는 ‘사전 작업’이 완료된 만큼 한국 우주개발 사업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누리호 발사 성과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부터 누리호 고도화 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2027년까지 차세대 소형 위성, 관측·정찰용 광학위성을 실은 누리호를 네 차례 더 발사해 신뢰도를 확보하는 게 고도화 사업의 내용이다. 누리호 개발 사업은 2010년 3월 시작할 때부터 민간 업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전제로 진행됐다. 고도화 사업에서도 발사체 기술의 민간 이전을 통해 체계종합기업을 육성, 민간 우주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2030년 이후엔 한국형 무인 달 착륙선을 실은 차세대 발사체(KSLV-Ⅲ)를 쏘아올리는 게 목표다.

임감록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발사체체계팀장은 “우주발사체 개발 사업의 주도권이 민간 업체로 넘어가는 만큼 한국 우주산업도 정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에서 민간 주도의 뉴 스페이스 시대로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업 역량에 우주개발 성패 달려

미국, 유럽연합(EU) 등 우주 선진국이 후발 국가와 ‘초격차’를 벌리는 데는 민간 업체들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2002년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세계 1위 우주기업으로 발돋움한 스페이스X가 좋은 예다. 스페이스X는 재사용 로켓 ‘팰컨9’으로 최근까지 육지·바다로 귀환을 100회 이상 성공시켰다. 우주업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스페이스X의 팰컨9을 세 개 묶은 재사용 발사체 ‘팰컨헤비’의 ㎏당 발사비용은 1680달러다. 한 번 쓰고 버리는 누리호의 ㎏당 환산 발사비용(3만2595달러)의 20분의 1 수준으로 경제성이 높다.

민간 우주업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선 지구 저궤도(400~600㎞)를 선점하려는 업체들의 경쟁이 뜨겁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이조스가 설립한 우주개발업체인 블루오리진은 미국 보잉, 애리조나주립대 등과 함께 차세대 국제우주정거장 ‘오비탈리프’를 2020년대 말 선보일 계획이다. 관측, 정찰, 통신 등 다양한 용도에 쓰이는 소형 위성 전용 발사체 시장 역시 100여 개 스타트업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현재 소형 위성 상업 발사가 가능한 업체는 로켓랩, 아스트라 등 5개 내외다.

해외 우주기업들이 성공한 배경에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지난해 세계 각국 정부가 우주 관련 프로그램(유·무인 우주선, 로켓 발사 등)에 들인 예산은 924억달러(약 116조6600억원)로 알려졌다. 이 중 민간 분야 지출이 530억달러(약 66조9200억원)로 절반을 넘었다.

지난해 한국 정부의 우주사업 지출 예산은 세계의 0.7%에 불과한 6억7900만달러(약 8804억원)에 머물렀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국내 우주산업 매출은 2020년 3조4293억원으로 3년 전인 2017년 4조1457억원에 비해 17.2% 줄었다. 김종암 한국항공우주학회장(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은 “국내 우주산업 기반이 비교적 약한 만큼 범부처 컨트롤 기능을 갖는 항공우주청을 조속히 신설해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