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경제 원팀'은 개발시대 잔재다
1957년 한 경제학자가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1909~1949년 기간 무엇이 경제성장에 기여했나를 분석한 논문을 낸 로버트 솔로였다. 노동의 기여분, 자본의 기여분을 뺀 ‘설명할 수 없는 잔여분(residual), 성장의 85%’ 비밀은 기술 발전에 있었다. ‘총요소생산성’ 개념은 이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앨프레드 마셜, 조지프 슘페터 등도 전통적 생산요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술 변화’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솔로가 이들의 통찰력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1957년은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 미국에 큰 충격을 안겨준 해다. 맞대응에 부심하던 미국 입장에서 솔로의 논문은 왜 과학기술에 투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보여줬다. 또 하나의 역사적 의미는 기술혁신을 하면 자본과 노동의 이익 공유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점이다. 솔로의 논문은 자본의 한계생산성 체감 때문에 지속 성장을 하려면 기술혁신이 필요하고, 기술 포용이 장기적으로 노동자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한마디로 ‘혁신 주도 성장 보고서’였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윤석열 정부의 네 가지 중요한 과제로 ‘국익 외교와 강한 국방’ ‘재정 건전성’ ‘국제수지 관리’ ‘생산성 향상’ 등을 적시했다. 기술력과 경제력이 없으면 국익 외교도 강한 국방도 없다. 재정 건전성은 위기 시에 더욱 중요하지만, 쓸 곳이 갈수록 늘어나는 재정지출의 구조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성장을 통한 세수 기반 확충이 필수적이다. 밖에서 한국 경제를 판단하는 거시경제변수인 국제수지 관리도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산업이 계속 나와줄 때 가능하다. 결국 마지막 과제인 생산성 향상, 그리고 이를 통한 지속 성장이 담보되지 않으면 앞의 모든 것은 다 무너지고 만다. “생산성이 전부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거의 전부”라는 폴 크루그먼의 주장은 백번 맞는 말이다.

생산성은 혁신이 성장에 기여하는 핵심 경로다. 솔로는 이 대목에서 또 한 번 시대의 화두를 던졌다. 1980년대 컴퓨터 혁명 속에서 제기했던 ‘생산성 패러독스’가 그것이다. 혁신이 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느냐는 역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생산성 증가세로 해소됐지만, 후속 과제를 남겼다. 왜 국가·산업·기업·개인마다 생산성에 차이가 나는지, 혁신이 생산성으로 이어지기 위한 시차의 문제와 구(舊)경제에서 신(新)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확산의 문제가 그것이다. 에릭 브리뇰프슨 등이 제기하는 ‘인공지능(AI) 생산성 패러독스’도 같은 논리다. 역설을 먼저 해소하고 극복하는 쪽이 성장의 주도권을 잡는다.

이런 맥락에서 한 후보자가 “제도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며 총요소생산성을 강조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혁신이 시도돼도 제도와 문화가 장애물로 버티고 있으면 생산성으로, 성장으로 이어질 리 없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총요소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다. 그런데도 실패로 돌아간 데는 이유가 있다. 정권마다 규제개혁이 공수표로 끝난 데서 알 수 있듯이 정부 주도 경제 시대의 제도와 문화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총요소생산성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 정부 주도 경제를 민간 주도 경제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면 된다. 불행히도 시작부터 꼬여갈 조짐이다. 민간이 지식과 정보에서 정부를 압도한 지 오래인데도 옛 경제 관료들이 새 정부로 속속 귀환하는 장면이 그렇다. 올드보이들이 일하던 경제 시대에는 지금의 AI도 메타버스도 없었다. 정부 주도 경제 시대의 유능이, 그것도 관료들이 말하는 유능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통할 것이란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개인과 기업 하나하나가 혁신 주체이자 플랫폼인 세상이다. 내각 인선을 두고 ‘경제 원팀’을 말하는 것 자체가 ‘개발적 사고’의 잔재다. 청와대 중심에서 책임장관제로의 분권을 말하지만, 정부 주도 경제란 틀이 그대로인 한 민간 입장에서 달라질 것은 없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정부에서 민간으로의, 지식과 정보에 비례해 이뤄지는 분권이다. 경제에 보이지 않은 원팀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에서 끝없는 혁신을 불러오는 ‘진화적 사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