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는 올 9월 크리스털, 금, 은 등으로 화려하게 디자인한 드레스, 재킷, 왕관 등 아홉 작품을 경매에 부쳤다. 이 작품들은 디지털 세계에만 존재하는 ‘가상 패션 NFT(대체불가능토큰)’였지만 총 560만달러에 팔렸다.

#2. 디지털 패션 스타트업 RTFKT는 올 2월 디지털 아티스트 푸오셔스와 손잡고 600종의 가상 스니커즈 NFT를 선보였다. 이 NFT는 판매 7분 만에 완판돼 31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아바타가 입을 옷에 수백만원···'메타패션'에 꽂힌 MZ
최근 패션과 메타버스·NFT의 융합이 가속화하면서 ‘메타패션(meta fashion)’이 글로벌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메타패션을 주도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SNS, 메타버스 속의 나’를 현실의 나만큼이나 중요한 자아로 여기는 데다 NFT화된 디지털 패션이 투자 수익까지 낼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어서다.
560만달러에 팔린 D&G 디지털 드레스
메타패션이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19년이다. 그해 5월 네덜란드 패션 스타트업인 패브리컨트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가상 드레스를 경매에 부쳤는데, 리처드 마라는 재력가가 9500달러에 샀다. 그는 이 옷을 아내 메리 렌에게 선물했다. 렌은 자신의 사진에 디지털 드레스를 입혀 SNS에 올렸다. 현실에는 없는 옷이기에 디지털 드레스의 용도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때만 해도 디지털 옷 구매는 ‘별난 재력가의 별난 취향’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올 들어선 상황이 달라졌다. 디지털 옷이 메타버스·NFT와 만나면서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메타패션 전문 업체부터 부쩍 늘었다. RTFKT, 드레스엑스, 디머티리얼라이즈드, 애글릿 등이 대표적이다. RTFKT는 지난 3월 가상 스니커즈 흥행에 힘입어 10월엔 패션 디자이너 제프 스테이플과의 협업으로 800여 개 가상 신발 NFT를 내놓았다. 이들 NFT는 개당 평균 약 2만달러에 팔렸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도 메타패션 시장에 뛰어들었다. 올해 들어 돌체앤가바나, 구찌, 휴고보스 등이 디지털 의류와 신발 등을 선보였다. 구찌는 지난 10월 ‘구찌 스니커 개러지’라는 스마트폰 앱을 출시했다. 여기서 가상 신발을 구매한 뒤 스마트폰 카메라로 발을 비추면 증강현실(AR) 기술로 ‘가상 피팅’이 가능하다.

아바타만 입을 수 있는 디지털 드레스도 인기다. 구찌, 루이비통, 버버리는 로블록스와 제페토 등에 메타버스 아바타용 옷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올 8월 구찌의 디지털 ‘디오니소스 백’은 로블록스에서 약 4100달러에 판매됐다.
NFT와 융합돼 투자 수익까지
국내에서도 메타패션에 주목한 업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패션 스타트업 오브오티디(OFOTD)는 최근 “이달 중순 디지털 드레스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가수 이효리가 지난 11일 열린 ‘2021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에서 오브오티디와 신진 패션 브랜드인 르 수기 아틀리에가 만든 디지털 드레스와 재킷(사진)을 입었는데, 이를 디지털 옷으로 만들어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입어볼 수 없는 디지털 패션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는 건 ‘가치의 전환’과 맞물려 있다. 주요 소비층인 MZ세대에게 ‘SNS나 메타버스 속의 나’는 현실세계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명품 디지털 옷·가방은 대개 실물보다 훨씬 저렴하다. 현실에선 엄두를 못 낼 명품을 가상세계에서나마 입어보며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다. 메타버스 기술이 진화한 덕에 디지털 옷의 ‘사용성’도 확대되고 있다. 2019년 패브리컨트의 디지털 옷은 사용자가 사진을 보내면 옷을 합성해 보내주는 게 끝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한 번 구매한 디지털 옷은 자신이 원할 때 스마트폰으로 가상 피팅할 수 있는 AR 서비스도 활발해지고 있다.

대다수 디지털 패션은 NFT로도 제작된다. NFT는 디지털 콘텐츠에 고유한 인식값을 부여해 소유권을 확실히 하고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소장 가치가 크다고 평가되는 패션 NFT는 재판매해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명품 NFT 시장 규모가 2030년 56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