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상태 폐연료봉 처리 길 열려
'친환경' 소형원자로에 활용 가능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진이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시설 ‘프라이드(PRIDE)’에서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진이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시설 ‘프라이드(PRIDE)’에서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 핵연료(폐연료봉)를 4세대 원전 소듐냉각고속로(SFR)의 핵연료로 재활용하는 첨단기술인 파이로-SFR 연구 결과를 미국 원전당국이 공식 승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1978년 첫 원전(고리 1호기) 가동 이후 40여 년간 쌓아만 두던 폐연료봉 1만7500여t을 처리할 길이 처음 열렸다.

▶본지 4월 27일자 A1, 3면 참조

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한·미 원자력연료주기공동연구(JFCS) 운영위원회는 미 아이다호연구소, 아르곤연구소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지난 10여 년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JFCS 보고서를 지난달 최종 승인했다. JFCS 운영위는 미 국무부, 에너지부, 핵안보청과 한국 과기정통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참여한다.

JFCS 보고서는 파이로-SFR의 기술적 타당성, 경제적 실현 가능성, 핵 비확산성에 대한 근거를 담은 방대한 연구자료로 1000쪽에 이른다. 구체적 내용은 양국 간 협의에 따라 공개되지 않는다. 보고서는 “파이로-SFR이 상용화를 위한 후속 연구에 들어갈 단계가 됐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로-SFR은 핵폭탄 연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식 공정이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지난 6월 ‘미래 에너지산업의 게임체인저’라며 공동 개발을 천명한 원전도 SFR이다.
"韓, 파이로-SFR 원천기술 세계 첫 확보"
사용후 핵연료는 엄청난 방사선을 내뿜기 때문에 여러 저장 단계를 거친다. 먼저 원전 내 수조에 임시로 뒀다가(습식 저장) 5년 정도 지난 후 건식 저장시설(콘크리트 무덤)로 옮겨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추가 중간저장을 거쳐야 하며, 지하 500m 아래 완전히 파묻을 수 있는 특수시설(URL)도 필요하다. 스웨덴, 스위스, 핀란드, 프랑스, 일본 등은 URL 운영을 시작했지만 국내엔 중간저장시설과 URL이 전무하다. 현재 모든 폐연료봉은 원전 내에 쌓아만 두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1만7578t이 저장돼 있다.

문제는 저장시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용후 핵연료 축적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북 경주 월성원전 1~4호기 포화율은 6월 98.2%에 육박했다. 당장 내년 3월 ‘강제 셧다운’에 들어갈 판이다. 경북 울진 한울1~6호기는 86.9%, 부산 기장 고리1~4호기와 신고리 1·2호기는 83.8%, 전남 영광 한빛1~6호기는 76.2%에 달한다.

파이로-SFR은 이 ‘골칫거리’를 해결할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다. 폐연료봉의 ‘초우라늄 원소(TRU)’를 핵 비확산 기조에 맞게 안전하게 처리해 사용전 핵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TRU는 수만 년이 지나도 강한 방사선을 내뿜는 고(高)독성 장반감기 핵종(플루토늄,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 등)을 말한다. 파이로-SFR은 폐연료봉의 1%가량을 차지하는 TRU를 추출한 뒤 SFR 원료로 재투입해 탄소 배출 없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JFCS 보고서는 특히 한·미 공동 연구진이 1회당 사용후 핵연료 4~5㎏을 처리할 수 있는 파이로-SFR 원천기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과기정통부는 연내 각계 의견 수렴을 거쳐 파이로-SFR 실증연구 및 상용화 계획을 마련할 방침이다. 다만 탈원전을 고수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 임기 내 계획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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