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향한 집착이 독 됐다…LG폰 은퇴 부른 결정적 세 장면 [노정동의 3분IT]
[노정동의 3분IT]
① 아이폰 큰 인기 '평가절하' 패착
② 피처폰 '대성공'에 취해 사업전환 늦어져
③ "애플·삼성과 '다른 길' 집착하다 소비자와 멀어져"
① 아이폰 큰 인기 '평가절하' 패착
② 피처폰 '대성공'에 취해 사업전환 늦어져
③ "애플·삼성과 '다른 길' 집착하다 소비자와 멀어져"

"2007년 아이폰 출시가 LG폰 은퇴로 이어질 줄은"
국내외 IT 전문가들은 LG가 2007년 아이폰 출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휴대전화 사업 실패의 결정적 순간으로 꼽는다. 애플은 2007년 전 세계 시장에 MP3와 인터넷 기능을 탑재한 아이폰을 처음 선보였고, 2009년 한국에 아이폰3GS를 출시했다. 업계에서조차 스마트폰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기 전에 아이폰은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아이폰 인기에 놀란 삼성전자는 아이폰3GS 출시 이듬해인 2010년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갤럭시S'를 급하게 내놨다.
하지만 LG전자는 2009년에도 '뉴초콜릿폰'과 '프라다폰2' 등 피처폰으로 대응했다. 당시만 해도 LG전자는 노키아, 모토롤라 등과 함께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휴대전화 회사였다. '초콜릿폰(2005년)'과 '프라다폰(2007년)'이 세계적으로 메가히트(대성공)를 치면서 2008년과 2009년 각각 1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2010년 출시한 LG전자의 첫번째 스마트폰 '옵티머스'는 그야말로 천덕꾸러기였다. 잦은 고장으로 소비자 불만이 잇따른 데다 부품 조달마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급하게 출시한 탓에 소프트웨어 최적화 등의 문제도 나왔다. 소비자가 마주한 LG전자의 첫번째 스마트폰 이미지가 중요했지만 안착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애플도 안 하고 삼성도 안 한 것에 집착"
LG전자는 'G 시리즈'로 재기에 나섰다. G 시리즈는 LG전자의 공격적인 투자에 힘입어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선택지처럼 보였다. 특히 2014년 출시된 'G3'는 LG전자 스마트폰 중에선 처음으로 누적 판매량 약 1000만대를 기록해 최대 실적을 올렸다. 앞서 출시한 'G2'가 물밑에서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것이 G3의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LG전자 휴대전화 사업본부는 그해 3161억원의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사업 철수해도 모바일 특허는 남는다"
지난 4월 사업 철수를 결정한 이후 베트남 빈그룹과 휴대전화 사업 통매각을 논의했으나 결국 이뤄지지 않은 것은 모바일 관련 특허 때문이다. LG전자는 특허를 제외한 디바이스 부문만을 매각하길 원했고 빈그룹은 특허까지 넘겨받길 원해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LG전자는 휴대전화 사업에서 철수해도 핵심 모바일 기술의 연구개발은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6G 이동통신, 카메라, 소프트웨어 등 핵심 모바일 기술은 차세대 TV, 가전, 전장부품, 로봇 등에 필요한 역량인 만큼 최고기술책임자(CTO) 부문 중심으로 연구개발을 지속하기로 했다. 2025년께 표준화 이후 2029년 상용화가 예상되는 6G 원천기술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특히 모바일 일부 특허는 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에도 쓰이고 있다.

LG전자는 휴대전화 사업 종료 이후에도 사후 지원 서비스(AS)는 제공한다. 국내에선 제품 제조일로부터 4년간 AS가 지원된다. 운영체제(OS) 업그레이드의 경우 프리미엄모델은 3년간 지원된다. 간편결제 서비스인 LG 페이도 사업종료 후 최소 3년간 유지키로 했다. LG전자 휴대폰 사업을 담당하는 MC 사업본부 임직원 3400여명의 재배치도 마무리 됐다. LG전자는 지난 29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컨퍼런스콜에서 "MC사업 종료 발표 이후 수차례 인력 재배치를 진행했다"며 "개인 희망과 직무연관성을 고려해서 계열사 및 내부로 재배치했으며, 국내의 경우 LG전자 외 다른 계열사로 4분의 1이 이동했다"고 밝혔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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