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가 한국중성미자관측소(KNO) 추진단 초청으로 지난달 10일 특별강연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가 한국중성미자관측소(KNO) 추진단 초청으로 지난달 10일 특별강연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입자’라고 하면 보통 원자, 분자 등을 말한다. 세상 모든 게 입자로 구성된다. 빛도 ‘광자’란 입자로 돼 있다. 그런데 광자는 질량이 없다. 광자를 제외하고, 질량을 가진 입자 가운데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입자가 있다. ‘유령 입자’로 불리는 중성미자다.

중성미자는 모든 물질을 투과한다. 태양 등 별의 중심부에서 끝없이 방출되고 있다. 대기권에서도 쏟아지며, 방사성 물질에서도 많이 나온다. 블랙홀과 마찬가지로 우주 생성의 비밀을 풀어줄 중요한 열쇠로 과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물리학계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1초에 중성미자 1000조 개가 인간을 투과하고 있다. 선뜻 믿기지 않지만, 그동안 물리학계가 검출한 중성미자를 토대로 역산한 결과다. 1988년과 1995년, 2002년과 2015년 노벨물리학상이 중성미자를 연구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유인태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박명구 경북대 천문대기학과 교수 등 국내 연구자 40여 명은 지하 1㎞ 공간에 50만t의 물과 광센서 등으로 이뤄진 ‘한국 중성미자 관측소(KNO)’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제안했다고 18일 밝혔다. 적합한 입지로는 대구 달성군 비슬산, 경북 영천시 보현산을 제안했다.

중성미자는 빛보다는 느리지만, 광속에 근접해 포착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낮은 확률로 중성미자를 포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중성미자가 물 분자 원자핵과 반응할 때 나타나는 ‘체렌코프’ 현상을 관측하면 된다.

빛은 물 등 특정 매질 속에선 속도가 느려지는데, 이런 매질에서 입자가 빛보다 빨라질 때 발산되는 푸르스름한 빛을 체렌코프 현상이라고 한다. 원자력발전소 노심 안에서 일어나는 우라늄 핵분열 과정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하 깊은 공간에 중성미자 검출 시설을 짓는 이유는, 방해가 될 수 있는 모든 다른 입자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중성미자로 인한 체렌코프 현상’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일본은 1983년부터 가미오칸데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중성미자 검출 연구를 해왔다. 이를 토대로 2002년,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거머쥐었다.

중성미자는 세 종류(전자·뮤온·쿼크 중성미자)로 나뉘는데, 가지타 교수는 이들 간 질량 차이를 처음 규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중성미자 질량 자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 역시 1조7000억원을 투입해 중성미자 발굴 프로젝트 ‘듄(DUNE)’을 진행 중이다.

중성미자 연구가 산업적으로 어떻게 응용될지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 KNO가 들어서면 당장 기대되는 역할이 있다. 북한이 숨겨둔 핵시설 감지다. 핵미사일 발사장이 지하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면 위성 등 첨단 기술로도 감지가 어렵다. KNO가 있다면 북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성미자를 포착해 핵 시설 유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유 교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중성미자 관측소를 통해 핵시설을 찾아내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없었다면 원전과 위성항법시스템(GPS) 등이 존재할 수 없고,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현재 전자공학과 반도체도 없다”며 “중성미자 연구의 파급효과는 상당하며, 앞으로도 노벨상의 지속적 수상이 기대되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KNO추진단이 제안한 지하시설 규모는 일본 중성미자 관측시설인 하이퍼-가미오칸데와 미국 듄을 뛰어넘는다. 사업기간은 6년, 사업비는 3500억원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