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세포폐암은 진행이 빠른데다 조기 발견이 어려워 ‘침묵의 살인마’로 불리는 암종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항암제 효과가 매우 낮은 암종이라 악명이 높았지만, 최근 다양한 표적치료제가 개발되고 효과가 입증되며 치료의 길이 열리고 있다. 비소세포폐암의 치료제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살펴봤다.
폐암은 항암제의 효과가 가장 낮은 암종 중 하나다. 비소세포폐암은 원발성 폐암의 약 85%를 차지하는 암종이다.
폐암은 항암제의 효과가 가장 낮은 암종 중 하나다. 비소세포폐암은 원발성 폐암의 약 85%를 차지하는 암종이다.
비소세포폐암(NSCLC·Non-Small Cell Lung Cancer)이란 원발성 폐암의 약 85%를 차지하는 암종으로 현미경학적으로 내리는 진단명이다. 비소세포폐암 중에서도 더 세부 분류가 가능하며,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선암 및 편평상피세포암이다.

폐암은 그 특성상 조기 발견이 쉽지 않으며, 수술을 받은 1, 2기 환자들 상당수가 재발을 경험하기 때문에 항암화학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 암종이라고 할 수 있다.

약 10년 전만 해도 폐암은 항암제 효과가 가 장 낮은 암종 중 하나였고 오랫동안 사용했던 세포독성항암제 중앙생존값은 10개월 정도에 그쳤다. 이로 인해 폐암은 발생률과 상관없이 사망률 세계 1위의 암종이었다.

이는 국내 통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해 2019년 현재 발생률 4위의 암종이지만, 인구 10만 명 당 사망자 수 36.2명으로 간암(20.6명), 대장암(17.5명), 위암(14.9명), 췌장암(12.5명)보다 높다.

동양인에게서 특히 많은 EGFR 돌연변이

오래전부터 정상세포에 대한 영향 없이, 암 세포만을 공격하는 표적항암제 연구가 이뤄져왔다. 1999년 만성골수성백혈병에 대해서 글리벡이라는 표적항암제를 시작으로, 많은 암종에서 정상세포에서 발현되지 않는 표적을 찾고, 이것만을 공격하는 표적항암제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다.

비소세포폐암은 현재 시점에서 이런 표적항암제에 대한 연구가 가장 많이 진행된 암종이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표적항암제가 사용 중이다. 현재 비소세포 폐암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표적은 총 7개(EGFR, ALK, ROS1, BRAF, NTRK, MET, RET)이다. 이 중 EGFR, ALK, ROS1, BRAF에 대한 표적항암제는 국 내에서도 보험급여가 인정돼 활발히 사용 중이다.

이 외에도 KRAS, HER2 및 EGFR 변 이 중에서 기존 약제가 잘 듣지 않는 ‘EGFR 엑손 20 삽입 변이ʼ에 대해서도 활발히 신약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조만간 10개의 표적 및 표적항암제를 가진 암종이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비소세포폐암에서 가장 대표적인 EGFR 변이는 2004년 처음 발견됐다. 이 변이는 모든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EGFR 돌연변이는 동양인에게서는 약 30~50%, ALK 변이는 동서양 차이 없이 약 5~7%로 보고되며, 나머지 변이들이 1% 내외로 보고되고 있다.

우여곡절 많은 EGFR 변이 치료제 개발 역사

EGFR 변이는 주로 여성, 비흡연자, 동양인, 비편평상피세포 폐암에서 더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EGFR 변이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EGFR 억제제는 기존 항암요법보다 반응률이 좋고 부작용이 적다.

그 역사를 살펴보면 다양한 암종에서 EGFR 발현이 증가돼 있고, 그 발현의 정도가 환자의 예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2000년대 초반부터 EGFR 경로를 억제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게피티닙(제품명 이레사), 얼로티닙(제품명 타쎄바) 등 1세대 EGFR 타이로신 키나아제 억제제들은 초반 임상에서는 표적항암제임에도 불구하고, 이 약제가 정확히 어떠한 것을 억제하는지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임상시험 시 효과가 나타나는 시험군을 제대로 선별하지 못하고, 기존 세포독성항암 제 임상처럼 모든 폐암 환자에게 투여했다.

결국 기존 치료법과의 우위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가 철회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부 환자에게서 아주 놀라운 효과를 보였고, 이를 통해서 실제 문제가 있는 것은 EGFR의 단백질 발현이 아닌 EGFR 타이로신 키나아제 부위의 돌연변이인 것을 알게 되었다.

2006년이 돼서야 EGFR 돌연변이 비소세포 폐암 환자에게서 표적항암제와 기존 세포독성항암제를 비교하는 임상 3상 시험이 실시됐고, 2009년부터 이에 대한 결과들이 발표됐다. 이로써 EGFR 돌연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로 EGFR 억제제가 인정받기 시작했다. 게피티닙은 2015년에야 FDA 재승인을 받았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EGFR 억제제의 역사를 볼 때 약제의 개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떤 변이가 정말 암의 발생과 진행을 촉진하고 이끌어나가는 드라이버 돌 연변이(driver mutation)인지, 아니면 이와 관계없이 드라이버 변이에 같이 따라가는 패신저 변이(passenger mutation)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임상연구뿐 아니라 전임상 연구를 통한 기능연구가 매우 중요함을 의미하며, 표적을 확인하지 않고 표적항암제의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후 ALK, MET 치료제는 개발 속도 빨라져

ALK 억제제의 개발은 EGFR 억제제의 개발보다 훨씬 더 스마트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이뤄졌다. 2007년 폐암에서 ALK 유전자 융합이 매우 강력한 발암인자임이 밝혀지고, 이미 개발 중이던 MET 및 ALK 억제제인 크리조티닙(제품명 잴코리)의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임상은 ALK 융합이 있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해 훨씬 빠른 결과를 도출했다. 폐암에서 ALK 융합을 발견한 지 3년 만인 2010년 임상 1상 결과를 발표했다. 이듬해에 FDA 승인을 받았고 아직도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EGFR 및 ALK 억제제의 초기 개발 역사를 살펴보면 표적항암제 개발에서 정확한 표적의 발굴이 표적항암제에 효과가 없을 환자에게 불필요한 치료를 막고, 나아가 약제 개발 기간을 단축시키는 데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표적을 발굴하고, 그에 맞는 표적항암제를 개발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었다. 한계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아무리 표적항암제라고 할지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내성을 가지게 된다.
둘째, 이러한 약제의 혈뇌장벽(BBB·Blood-Brain Barrier) 투과율이 높지 않아 많은 환자들이 중추신경 계에서의 암진행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정상 세포 내의 표적을 억제함으로써 나오는 부작용이 있다.

표적항암제의 근본적인 한계…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1·2세대 EGFR 억제제인 게피티닙, 얼로티닙, 아파티닙(제품명 리보세라닙)의 평균 무진행 생존기간은 10~12개월 정도였으며 많은 환자들이 뇌전이를 경험한다.

전 세계 비소세포폐암 연구자들은 이러한 1, 2세대 EGFR 억제제의 내성 기전에 대해 연구했고, 이 중 절반 정도가 EGFR의 엑손 20번 내에 T790M이라는 돌연변이를 획득하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2차 돌연변이가 1, 2세대 EGFR 억제제 내성의 원인이었던 것.

이후에 3세대 EGFR 억제제의 개발이 활발히 이뤄졌으며, 이러한 3세대 EGFR 억제제가 가져야 할 특성은 T790M 돌연변이를 억제할 수 있고 뇌전이에 대한 효과가 기존 약제보다 더 좋고 부작용이 적은 것이었다.

여러 가지 약제가 개발됐으나, 최종적으로 승인돼 시장에서 나온 제품은 아스트라제네카의 오시머티닙(제품명 타그리소), 유한양행의 레이저티닙(제품명 렉라자) 등이다. 이 두 가지 3세대 EGFR 억제제 모두 1, 2세대 EGFR 억제제가 억제하지 못했던 EG FR T790M 돌연변이를 효과적으로 억제했고 혈뇌장벽 투과율이 탁월했다. 이상반응도 적게 보고됐다.

오시머티닙의 경우 초치료(1차 치료) 환자에게 사용했을 때, 무진행 생존기간이 약 19개월로 보고됐고(기존 약은 약 10개월), 전체생존기간도 약 38개월로 보고되고 있다(기존 약은 약 31개월).

같은 콘셉트의 임상시험이 레이저티닙에서도 진행 중이다. ALK 분야에서도 MET, ROS1, ALK를 모두 억제하는 크리조티닙보다 조금 더 ALK를 특이적으로 억제하는 제2 세대 ALK 억제제들이 개발되고 있다.

알렉티닙(제품명 알레센자), 브리가티닙(제품명 알룬브릭), 세리티닙(제품명 자이카디아)다. 이런 2세대 약제들은 크리조티닙에 대한 내성을 극복하며, 초치료부터 사용했을 때는 기존 약제인 크리조티닙의 무진행생존기간(대략 10~12개월)보다 더 긴 무진행 생존기간을 증명했다.

재발률 낮추고 완치율 높이는 연구 진행 중

즉 이런 후속세대의 표적항암제들은 초기에는 기존 세대 표적항암제의 획득 내성 극복을 위주로 연구되지만, 이후에는 초치료부터 기존 세대 표적항암제와의 생존율 비교 임상, 부수적으로 뇌전이 억제 여부 및 이상반응에 대한 비교까지 모두 진행하는 추세다.
이런 연구로 많은 진료 지침에서 최근 세대의 표적항암제를 초치료부터 사용하는 것을 더 권유하고 있다.

최근 표적항암제 연구의 방향성은 4기 환자뿐 아니라 수술 전 또는 수술 후 표적항암제 투여를 통해 1~3기 환자의 재발률을 낮추고 완치율을 높이는 것이다.
또 이런 약제가 결국에는 내성이 발생하기 때문에 초기부터 다른 약제, 예를 들어 세포독성항암제 또는 다른 표적항암제 등과 병합하는 전략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소세포폐암 일부 환자들은 약제의 대상이 될 만한 특정한 표적이 없으며, 표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약제에 대한 획득 내성이 발생한다.

이런 내성 메커니즘을 모두 알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에 임상분야와 전임상, 병원과 제약업계의 활발한 교류 및 중개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내성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와 이에 대한 전임상 수준에서의 물질 연구, 그리고 이를 통해서 유망한 물질의 임상 적용으로 환자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표적항암제 신약 개발을 지속해야 한다.
<저자 소개>

[Cover story - part.1] ‘침묵의 살인마’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변천사
홍민희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 전공의 등을 수료했다. 2016년 연세대 의대 교수로 취임해 현재까지 폐암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암의 발견이 늦은 폐암 환자들을 위해 다양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신약 개발에 관심이 많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