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과거에 사용하던 ‘정통법’이 통할 때가 있다. 신약 개발에서도 시간 단축과 효율성을 포기하고 정통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리할 때가 있다. 약물의 기본 골격을 찾아내는 데 사용되는 세포 표현형 기반 스크리닝이 그렇다. 이 고전적인 방법으로 발견한 신약 사례를 소개한다.
최신의 실험 모델보다 고전적인 방법으로 신약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실험 과정에서 이런 융통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의 연구 자율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최신의 실험 모델보다 고전적인 방법으로 신약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실험 과정에서 이런 융통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의 연구 자율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신약 개발 과정은 환자들에게 필요한 질병에 대한 의학적 필요성을 감지하고 약물 작용점인 타깃을 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어 약물 스크리닝, 약물 최적화 등의 신약 연구단계가 잇따른다.

2000년 게놈서열 분석 이후 생물학, 약학, 독성학 및 의학 등 신약 개발 관련 학문 분야의 급격한 발전으로, 약물에 대한 작용기전의 이해와 다양한 약물 작용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신약 개발에서 대상이 되는 작용점은 단백질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많은 생리적 과정의 구성체인 mRNA, DNA, 지질 및 탄수화물 등도 새로운 표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고전적인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리하다

질병을 선정하고 타깃에 대한 리드(lead) 물질을 찾아내기 위한 스크리닝 방법은 일반적으로 시험관에서 수행하는 ‘in vitro assay’ 방법과 실제 세포를 대상으로 하는 ‘cell-based assay’ 방법으로 구분될 수 있다.

거대 제약사는 자체 보유한 수백만 종의 화합물을 고효율의 물질 탐색 방법(HTS·High Throughput Assay)을 사용해 스크리닝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런 저인망식 방법으로 수많은 고기들 가운데 가장 적합한 알짜 고기를 낚으려고 했지만 이런 HTS의 유용성이 최종적으로 신약으로 개발되는 빈도수와의 상관관계가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저인망식 방법을 피하고 고전적인 방법인 ‘세포 표현형 기반 스크리닝(C/PBS)’으로 되돌아가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다. 신약 개발은 융통성이 없으면 창조성도 없다. 먼저 세포 표현형 방법 저분자 화합물의 과거 성공 사례 하나를 공유하고 이어 항체도 고전적인 항체 집합체인 페이지 라이브러리 혹은 인간 합성 항체 라이브러리에서의 선택 방법을 넘어서 현재 C/PBS 방법을 사용하는 대한민국 작은 스타트업의 노력을 소개하려고 한다.

필자는 1986년 2월 쉐링플라우의 ‘알레르기와 염증(Allergy & Inflammation)’ 부서에서 시작해 25년을 이곳에서 근무했다. 1987년 머크의 ‘메바코(Mevacor)’가 첫 스타틴 (statin)으로 시장에 출시되자 쉐링플라우의 심혈관 부서(Cardiovascular Biology)도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한 치료제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1990년 초, 큰 제약회사마다 경쟁적인 타깃은 아실트랜스퍼라제(ACAT)였다. 콜레스테롤이 아실화(acylation)되는 데 가장 주된 효소인 ACAT 저해제를 개발해 스타틴보다 더 좋은 고지혈증 약을 만들겠다는 게 목표였다.

쉐링플라우도 당연히 스크리닝을 통해 고유의 리드(선도물질)가 있었는데 ‘아제티디논(2-azetidinone)’을 백본(backbone)으로 하는 구조였다. 그 과제의 제약화학 연구원이었던 두안 버넷 박사는 본인이 새로 만든 화합물 SCH-48461이 구조활성상관에 따라 정 말 좋은 결과를 가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세포실험 ‘in vitro assay’ 결과 IC50(Inhibitory Concentration 50%) 값이 26mM으로 높은 값이 나왔다. IC50은 특정 생물학적 과정을 억제시키는 물질(약물)을 일정시간 노출시켰을 때 세포 생존율을 50%까지 감소시키는 시료의 양을 의미한다. 즉 이 값이 작을수록 적은 양의 약물만으로도 특정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억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기대치보다 높은 IC50 값에 실망했지만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주말마다 같이 골프를 치는 친구에게 동물모델에 직접 찔러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콜레스테롤 섭취 햄스터 모델을 책 임지고 있던 친구인 데이비스 박사는 부서장의 허가를 받지 않고 임의로 동물실험을 감행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지금까지 CFH 모델에서 테스트한 ‘2-azetidinone’ 시리즈의 어느 화합물보다 낮은 ED50 값(2.2mpk)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결과를 칩 박사와 두안 박사가 보고하자 목표약품특성(TPP·Target Product Profile)에 따라 세포실험(in vitro) 값을 먼저 보고 동물실험을 진행하던 관행을 수정해 화합물을 만든 후에 직접 동물실험을 진행하는 것으로 바꿨다. 이 과제는 SAR을 동물모델에서 먼저 진행하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것도 융통성이다. 결국 고지혈증 약으로 허가된 ‘제티아(성분명 에제티미브)ʼ의 구조를 보면 대사를 막는 불소(fluorine)가 벤젠 링 구조 각각에 하나씩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임상실험에서 10mg 에제티미브를 스타틴을 이미 복용하는 환자들에게 투여했을 때 콜레스테롤이 18.5% 더 내려갔고, 이에 더해 트리글리세리드(TG·triglyceride), 아포지단백 B(apolipoptotein B)와 C 반응성 단백질 (c-reactive protein) 등이 환자에게 유의하게 내려갔다. 이것이 복합제를 개발하게 만드는 기본 자료가 되었고 결국 ACAT이 타깃이 아니라 장과 간에서 흡수를 저해하는 타깃으로 추정됐다.

스타틴과 다른 기전으로 작용하는 것은 알았지만 고전적인 동물실험 방법으로 약을 만들었기에 2002년 시장에 출시할 때까지도 타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결국 2007년에 에제티미브의 주된 타깃이 콜레스테롤 운반 단백질(cholesterol transport protein)인 NPC1L1(Nieman Pick C1 like 1) 단백질로 밝혀졌다.

연구의 자율성이 신약 개발의 융통성 가져와

이런 신약 개발의 숨은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만일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례가 가능할까. 필자의 답은 ‘아니요’다.

한미약품이 신약 개발에 계속 성공하면서 대부분의 대한민국 제약사가 기초연구부터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의 연구 자율성이 많이 무너져버렸다. 연구의 깊은 경험이나 촉이 없는 이들이 초기 단계부터 결정권자가 되는 것도 문제다. 돈이 많이 드는 임상개발 부분에서는 그럴 수 있다.

필자가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연구원을 진행 중이던 1985년 제약회사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들이 대학보다 좋다고 던진 몇몇 미끼 중 하나는 연구의 자율성이었다. 인터뷰 때마다 회사 측에서는 박사학위 소지자는 근무시간의 70%는 회사가 원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30%는 본인이 관심 있는 창의적인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책임을 지고 과제를 진행해야 할 연구소장이나 개발본부장이 회장에게 슬그머니 결정을 넘기는 사례가 너무 많이 보인다. 연구소장이나 개발본부장보다 아래 직책에 있던 칩 박사와 두안 박사가 자신들의 경험과 촉으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만든 연구 자율성이 제약사마다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저분자 물질을 예로 들었지만 바이오의약품인 항체도 표현형 방식으로 스크리닝해 약물을 발굴하는 것이 가능할까.

항체(antibody)는 항원(antigen)과 결합해 항원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항원을 제거하는 면역단백질이다. 항체는 타깃 항원과 고특이성-고친화도로 결합해 기능을 조절하는 치료제로 개발되는 대표적인 바이오의약품이다.

기존의 항체 기술은 60여 개의 단순한 구조의 표적에 국한돼 있었다. 이후 등장한 치료용 항체는 세포막 표면에 발현되어 세포 외부에 노출된 단백질 막단백질과 세포에서 분비되어 세포 외부에 있는 단백질 분비단백질을 표적으로 암, 면역질환 등의 치료제로 개발되어 왔다.

치료용 항체는 현재 항암 치료제의 선두주자지만, 이 항체 접근 방법도 표적이 밝혀지지 않은 질병 시스템에 대한 항체 및 표적 발굴 한계성을 지니고 당연히 세포질 내에 위치한 질환유발 단백질은 직접 타깃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지난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가운데)에게 특허증을 수여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대표는 치료용 항체를 세부 내부로 침투시켜 종양의 성장을 억하는 바이오 원천기술로 특허를 받았다.
지난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가운데)에게 특허증을 수여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대표는 치료용 항체를 세부 내부로 침투시켜 종양의 성장을 억하는 바이오 원천기술로 특허를 받았다.
난공불락의 ‘Ras’에도 ‘세포 표현형 기반’ 스크리닝 적용할 수 있어

1982년 발견한 이후 지난 30여 년간 라스(Ras) 돌연변이를 직접 표적하는 약물이 개발된 바가 없어 난공불락(undruggable) 표적이라 불리고 있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인 오름테라퓨틱은 라스 돌연변이 단백질을 직접 타깃하는 최초의 신약 항체 원천기술을 확보해 세계 학계 및 제약계의 주목을 받았다. 기존 합성신약은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 능력이 있어 세포질 안에 있는 단백질을 저해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용 항체의 경우, 합성신약과 달리 세포막 표면에 노출된 타깃 단백질(세포막 단백질)에 달라붙을 수는 있지만 세포질 안에 들어갈 수는 없는 특성이 있다.

오름테라퓨틱 공동창업자인 김용성 교수팀이 개발한 ‘세포침투 간섭항체’는 세포질 안까지 들어가 라스 돌연변이 단백질과 결합한다. 그리고 이 항체가 라스 단백질 돌연변이 가 보내는 종양 성장 신호를 차단하면서 암 세포의 성장을 느리게 한다.

즉 항체가 종양 세포에 침투해 라스 표적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하고 비정상적 신호 전달을 차단하는 기술이다. 문제는 작은 교수 연구실에서 가능하던 기술이 치료용 항체 개발 단계로 넘어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신약 개발은 융통성이 없으면 창조성도 없다. 치료용 항체도 고전적인 방법인 ‘세포 표현형 기반 스크리닝’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 표현형에 기반해 표적이 알려지지 않은 질병시스템을 제어하는 항체의 발굴과 표적 발굴이 가능하지 않을까.

놀랍게도 그런 고민을 하며 종양세포에 침투해 라스 표적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치료용 항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대한민국에 존재한다.
앱틀라스는 항체 개발 전문회사로서 보유하고 있는 원천기술인 활성 기반 항체선별 기술 (FAST·Functional Antibody Screening Technology)을 활용해 그동안 기술적 한계로 항체 개발이 어려웠던 많은 고난이도 질병 표적들, 예를 들어 GPCR이나 이온채널 등에 대해 활성 항체들을 발굴하고 개발하고 있다.

항체의 구조는 일반적으로 Y 형태로 약 150 kDa의 4중체(tetramer)로 항원과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부위인 가변영역과 결합된 항원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불변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진건의 바이오 산책] 세포 표현형 기반 스크리닝으로 되돌아가야 하나?
가변영역은 항원에 대한 특이성을 갖고 있으며 항체마다 서로 다르며, 불변영역은 동일한 기능을 하며 항체마다 동일하다.

가변영역은 다시 항원과 직접 결합하는 상보성 결정 영역, CDRs와 CDR 루프(loop)를 지탱해주는 FRs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6개의 루프들이 항원과의 특이적인 결합을 한다. 항체의 Fc 부위에는 FcgR을 통해서 면역세포와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항체의 Fc는 면역 세포의 타깃이 될 수 있고, 따라서 항체가 결합한 세포를 죽일 수 있게 된다.

앱틀라스가 이미 많은 수고와 오랜 시간 투자를 통해 만들어낸 활성 기반 항체선별 기술이란 어떤 것인가. 앱틀라스는 항체활성의 핵심부분인 CDR을 자체 설계해 ‘VH library, VH CDR H1, H2, H3’과 ‘VL library, VL CDR V1, V2, V3’을 먼저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라이브러리는 CDR 아미노산 서열의 체계적 배열로 항체 다양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VH, VL 집합체를 조합해 Fv 항체 집합체인 ‘Fv library’를 만들어 생산과 보관에 최적화된 그 라이브러리를 개별 보관한다.

그 라이브러리를 활성에 기반해 고속 선별(HTS)을 하면 표현형으로 선별한 초기물질 (phenotype hits)을 먼저 얻게 된다. 리드 항체의 집중된 라이브러리(focused library)를 다시 조합하고 고속 선별(HTS)해 ‘최적화된 항체’를 발굴하게 된다. 이렇게 ‘줌인(zoom-in)’ 방식을 적용해 다양성과 효율성을 모두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앱틀라스가 보유한 활성 기반 항체선별 기술이 기존 항체를 고르는 방법과 차별점이 무엇인가. 기존에는 항체 집합체 형태가 혼재하고 있으나 활성 기반은 모든 항체를 개별 분리, 보관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기존에는 항체 발굴 방식이 결합력 선택(affinity selection)으로 인해 소수 결합 항체만 활성 검사를 할 수 있지만 활성기반은 표현형 선택(phenotype selection)으로 모든 항체를 활성기반으로 선별할 수 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표현형 항체 발굴도 가능한 것이다. 기존에는 저해제, 차단제 위주로 발굴하지만 활성 기반은 조절제 (activator)를 포함한 모든 활성 항체가 가능한 것이다. 확장성은 기존에는 정보화된 항체 집합체를 구축하기 불가하지만 활성 기반은 정보 기반 맞춤형 항체도 가능하다.

필자는 이제 라스 정복이 변이의 11%인 G12C 종양세포에 침투해 라스 표적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저분자화합물 성공을 시작해 라스 항체로 끝내기를 기대한다. 활성 기반 항체 선별을 통한 라스 돌연변이를 타깃하는 항체 치료제를 개발해 지난 30년 동안 난공불락이던 라스 돌연변이를 공략하는 치료 항체가 탄생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그러면 가장 어렵다는 췌장암 환자들에게도 희망이 넘쳐나 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자 소개>

[배진건의 바이오 산책] 세포 표현형 기반 스크리닝으로 되돌아가야 하나?
배진건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8년 JW중외제약에서 연구총괄 전무를 지냈고 C&C신약연구소 대표를 역임했다. 한국아브노바 연구소장과 한독 상임고문을 거쳐 현재 이노큐어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이자 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을 맡고 있다. 국내외 신약 개발 분야의 석학으로, 저서로는 <사람을 살리는 신약개발(Back to BASIC)>이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