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젠이 ‘크리스퍼-캐스나인(CRISPER-Cas9)'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미국 특허 등록에 성공했다. 2012년에 출원한 이후 진보성이 없다는 이유로 받았던 거절 의견을 극복한 것이다. 원천기술을 분할출원한 일부가 등록된 것이므로 앞으로도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 다섯 기관이 참전한 크리스퍼 캐스나인 특허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2년, 미국 특허 전쟁의 서막

5일 툴젠 등에 따르면 유전자 가위 기술은 활용도 및 잠재 가치가 높다보니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2012년에 미국에서 크리스퍼 캐스나인 유전자가위 기술과 관련된 특허를 출원한 기관은 툴젠을 포함해 총 다섯 곳이다.
크리스퍼 캐스나인 기관별 특허 출원 시기(2012년). 자료 제공=툴젠
크리스퍼 캐스나인 기관별 특허 출원 시기(2012년). 자료 제공=툴젠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대가 2012년 3월20일로 특허 출원일이 가장 앞섰다. 5일 후에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가 출원했다. 두 대학의 특허는 핵이 없는 원시 세포인 원핵세포에 크리스퍼 캐스나인을 적용했다.

그해 10월23일에는 툴젠이 특허를 출원했다. 시그마 알드리치와 브로드 연구소는 각각 두 달 후인 12월 6일과 12일에 특허를 출원했다. 세 기관의 기술 적용 범위에는 진핵세포까지 포함됐다.

특허 등록은 출원 순서와는 다르게 결과가 나왔다. 특허 출원 시점이 가장 늦은 브로드연구소의 특허가 2014년도에 가장 먼저 등록됐다. 브로드연구소는 우선 심사(패스트트랙)를 신청했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빠르게 특허등록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 특허심판원(PTAB)에서 브로드연구소 등록 특허와 UC버클리의 출원 특허에 대한 저촉심사(Interference)를 시작했다.

저촉심사는 두 특허 사이에 선출원자를 정하는 제도다. 해당 특허를 기존의 등록특허와 비교해 같은 특허인지를 따진다. 같은 특허로 판단되면 그 중 어떤 특허가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이다.

특허심판원은 저촉심사에서 브로드연구소의 손을 들었다. UC버클리와 브로드연구소의 기술이 적용되는 대상이 다르므로 서로의 청구항(특허 범위)이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UC버클리는 기술 적용 범위를 원핵세포로 한정됐지만 브로드연구소는 진핵세포에 대한 적용을 명시했다는 설명이다.

이로서 브로드연구소의 특허와 UC버클리의 특허는 서로 다른 것으로 결론나면서 각각 특허권을 부여받았다. UC버클리는 브로드연구소보다 먼저 특허를 출원했지만 저촉심사 끝에 2018년에 특허가 등록됐다. UC버클리는 우리나라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미국연방순회항소법원(CAFC)에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권리 범위 극대화하는 분할출원 전략

유전자 교정은 일종의 기술이자 방법이다. 청구항이 포괄적이면 다른 특허와 충돌하거나 기존 특허와 저촉될 가능성이 높다. 심사관도 특허 범위를 줄이라고 권장한다. 그런 경우에는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가 줄어들지만, 등록 가능성은 높아진다. 때문에 하나의 특허를 나눠서 여러 개로 출원하는 ‘분할출원’ 전략이 사용된다.

브로드연구소와 UC버클리는 30~50여개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를 출원했다. 툴젠은 4개의 특허를 분할 출원했다. 브로드연구소나 UC버클리처럼 분할 출원 개수를 많이 늘리지 못한 것은 비용 문제다. 툴젠은 미국에서 법무법인을 통해 특허 출원을 진행하고 있다. 특허 출원비 외에도 각각의 특허 등록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게 툴젠의 설명이다.

한편 툴젠은 브로드연구소보다 먼저 특허를 출원했지만 심사관은 진보성이 없다며 거절 의견을 통보했었다.

툴젠은 거절 의견을 받은 이후 2017년에 PTAB에 항소했다. 그 결과 미국특허심판원은 지난 6월에 미국 심사관의 거절 의견을 파기하고 툴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툴젠이 출원한 기능성 향상 특허 '14/685568'(출원번호)과 '14/685510' 중 14/685568이 지난달 등록됐다.

회사에 따르면 특허 번호 끝번호 ‘568’이 ‘510’보다 권리 범위가 좁다. PTAB의 결정 이후 568은 저촉심사 없이 등록이 됐다. PTAB는 510의 특허 등록에 앞서 저촉심사를 진행할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툴젠은 나머지 두 특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툴젠은 저촉심사가 진행되더라도 승리할 것을 자신하고 있다. 진핵세포를 대상으로 유전자 가위의 작동을 증명한 첫 특허 출원이란 주장이다. 이미 진핵세포를 대상으로 개별 특허를 인정받은 브로드연구소보다 특허 출원일이 앞선다는 것이 근거다.

툴젠보다 출원 시기가 빠른 빌니우스대와 늦게 출원한 시그마 알드리치도 특허 등록에 성공했다. 업계에서는 두 기관의 특허가 저촉심사 없이 등록된 만큼 그 범위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으로도 권리 확보를 위해 툴젠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회사는 진보성 거절 의견을 극복했다는 사실에 다양한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끝까지 재판을 진행하거나 관계된 기관들 간에 협의가 진행될 수도 있다. 여러 기관이 분할 출원으로 각기 다른 범위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각자 보유한 특허만으로는 완전한 기술 구현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툴젠, 2023년 농업 분야 상업화 성과 기대

유전자가위는 동물 및 식물 세포의 유전자(DNA)를 교정하는 데 사용하는 기술이다. 인공 효소로 유전체의 특정 부위를 제거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크리스퍼 캐스나인 모식도. 자료 제공=툴젠
크리스퍼 캐스나인 모식도. 자료 제공=툴젠
크리스퍼-캐스나인 유전자가위는 가이드RNA(sgRNA)인 ‘크리스퍼’로 특정 염기서열 자리를 찾아가서 효소인 ‘캐스나인’으로 유전자를 자르는 기술이다. 일반적으로 크리스퍼를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이라고 표현한다. 1세대 유전자 가위인 ‘징크 핑거(ZFN)’과 2세대 ‘탈렌’에 비해 효율과 정교함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크리스퍼 캐스나인은 21개의 염기서열을 인식해 유전자를 잘못 자를 가능성을 낮췄다. 징크 핑거와 탈렌은 10개 내외의 염기서열을 인식한다. 이전 세대 유전자 가위보다 응용범위가 넓고 효율성도 높다는 설명이다.

유전자가위 기술들을 세대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세 기술 모두 치료제 개발이 진행 중인 동시대 기술이라는 의견이다. 표적하는 대상에 따라 ZFN이나 탈렌이 각각 효과적인 영역이 있다는 점도 세대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툴젠은 미국에서의 특허 등록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툴젠의 가시적인 성과는 신약이 아닌 농업 분야에서 먼저 나오고 있다. 유전자 편집기술은 농업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툴젠은 크리스퍼 캐스나인 기술로 올레산(oleic acid) 수치를 높인 콩을 개발했다.

올레산은 올리브유에 함유된 불포화지방산이다. 혈압을 낮추고 항산화 효과에 좋다고 알려진 올레산을 올리브가 아닌 재배가 쉬운 콩에 적용했다. 현재 중앙아시아에서 실제 재배에 적용할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있다. 2023년도 상업화하는 것이 목표다.

회사는 이 콩에 대해 지난 7월 미국 농무부(USDA)로부터 ‘Am I Regulated?' 승인을 받았다. 다른 종의 유전자를 사용하지 않고 기존 유전자를 편집했으므로 GMO(유전자변형생물체) 검증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검증받은 것이다. 이를 통해 유해성 평가 등 별도의 규제 없이 일반 작물과 동일하게 미국 시장에 출시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크리스퍼 캐스나인을 활용한 치료제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유전성 난치성 질환이 대상이다. 체내에서(In vivo) 직접 유전자를 편집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후보물질은 샤르코마리투스병 1A형(CMT1A) 치료제다.

CMT는 근육위축과 감각장애가 일어나는 유전성 신경장애다. 전체 유전병 환자 2500명 중 1명에서 발생하는 가장 흔한 유전병이다. CMT 1A형 환자는 세계에 140만명으로 추산된다. 현재 내부에서의 동물 실험을 마치고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을 통한 정식 전임상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B형 혈우병 치료제도 있다. 혈우병은 피가 응고되지 않는 질환이다. 현재 재조합단백질을 정맥주사로 투여하는 방법의 보충 요법이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어렵다. 툴젠이 개발 중인 B형 혈우병 치료제는 유전자 교정을 통해 완전한 치료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역시 전임상 단계에 있다.

‘키메라항원수용체-T세포(CAR-T)’ 치료제에도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기존에 혈액암에서만 작용했던 CAR-T 치료제를 고형암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개발 중이다. 그동안 고형암에 CAR-T 적용이 어려웠던 이유는 인체 장기에 붙은 암세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면역관문인 'PD-1'에 의해 활성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현재 다른 기업들이 개발 중인 고형암 CAR-T 치료제는 PD-1 억제제와 병용투여하는 방식으로 면역관문을 억제한다. 툴젠의 CAR-T는 크리스퍼 가위로 PD-1를 제거(KO·knock out)한다. CAR-T 치료제는 현재 전임상 단계를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이전하거나 공동개발하는 방식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세 번의 상장 실패…재도전은 신중하게

미국에서 긴 특허전쟁을 치루는 동안 툴젠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코스닥시장 상장에 세 번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2015년 첫 상장 심사는 최대주주와 2대 주주간 지분격차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통과하지 못했다. 2016년 두 번째 상장심사에서는 크리스퍼 기술에 대한 여러 특허가 출원됐으나 등록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툴젠은 2016년 한국 및 호주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에 대한 원천특허를 승인받았다. 2018년에는 유럽 및 싱가포르, 2019년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등록했다.

2018년 코스닥 입성 세 번째 도전에서는 최대주주인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수석연구위원과 서울대와의 특허권 분쟁이 도마에 올랐다. 김진수 위원이 서울대 재직 당시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개발한 유전자가위 특허권을 헐값에 툴젠에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의혹으로 심사가 지연되자 툴젠은 상장을 자진 철회했다.

관련해 툴젠은 작년 9월 서울대에 주식 3만주를 지급하며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툴젠은 해당 논란이 제기되기 전인 2011년에는 주식 10만주를 무상 증여했다. 서울대가 보유한 툴젠 주식은 총 13만주로 늘어났다. 앞으로 주요 제품 개발 및 출시 과정에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도 기술료 형식으로 서울대와 공유하게 된다. 이로써 툴젠은 회사 차원에서 특허권에 대한 헐값 매매 논란을 종결지었다.

작년에는 제넥신과 합병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합병에 찬성하지 않는 주주들이 행사한 주식매수청구권 규모가 회사가 예상했던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툴젠은 서울대와 협의하고 미국 특허가 등록되며, 그간 상장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를 모두 해소했다. 하지만 네 번째 상장 준비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도전할 계획이다. 김진수 단장 개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도전인 만큼 심사에 혹시 모를 변수가 될 수 있는 재판이 종결되기 전에는 상장을 추진하지 않을 방침이다.

박인혁 기자 hy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