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 부속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은 지난달부터 ‘한국형 워크스루 검사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 환자를 받는다. 환자가 오면 장갑이 달린 유리 차단벽 반대편에서 의료진이 검체를 채취한다. 환자당 검사 시간은 20분에서 4분으로 크게 줄었다. MGH의 워크스루 검사실은 국내 에이치플러스양지병원이 설치 및 운영 노하우를 전수해 가동될 수 있었다. 양지병원은 지난 3월 10일 국내에서 첫 워크스루 모델을 선보였다. 김상일 병원장은 “코로나19로부터 병원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탄생한 것이 워크스루 모델”이라며 “이제는 세계 각국이 찾는 수출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금속활자 혁신 맞먹는 'K메디컬'…규제 풀어 '도전 맥박' 뛰게 해야
코로나19가 의료·바이오 분야의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 의료 현장 곳곳이 혁신 실험장으로 변했다. 의료진 감염 위험을 낮춘 이동형·차량형 검사실은 ‘의사는 환자를 진료실에서 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어 가능했다. 해외에선 앞다퉈 한국형 검사실을 도입하고 있다. 올해 2월 말 제한적으로 규제가 풀린 원격진료(전화진료) 건수도 13만 건을 돌파했다. 오진 등 우려했던 부작용은 없었다.

韓 의료진에 쏟아지는 러브콜

“금속활자, 고려자기 등에서 그랬듯 머지않아 한국은 다른 나라에 새로운 상품과 사상을 수출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조지 스토다드 전 뉴욕대 총장은 1955~1961년 서울대 재건을 위해 미국이 주도한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이렇게 평가했다.

60년 전 그의 예견은 현실이 됐다. 미네소타 의대는 물론 세계 각국 의료인이 수술기술을 배우러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을 찾는다. 양한광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지금도 독일과 사우디아라비아 연수생들이 와 있다”며 “돌아갈 때가 됐는데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한국에 더 머물고 싶다고 해 고민”이라고 했다.

코로나19는 미국 의료기술을 수입했던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의료기술을 전수하는 나라로 격상시켰다. 국내 의료진은 감염병 대응 노하우를 묻는 각국 전문가 문의에 대응하느라 바쁘다. 낮엔 환자를 보고, 저녁엔 웨비나(웹세미나)에 참여한다. 방문석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국립교통재활병원장)는 “미국 재활의학회지 편집자로부터 한국의 재활 분야 전문가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이 왔다”며 “미국 학술지에 긴급히 실어야 할 코로나19 관련 논문 검토를 한국 의사에게 맡기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방역망 구축을 도와달라는 요청도 잇따랐다. 김상일 병원장은 “미국 캘리포니아 도시설계회사인 ‘솔루션즈2050’이 지역사회단체와 함께 워크스루 모델을 도입해 코로나19 스크리닝 부스를 만들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왔다”고 전했다. 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중독·재활센터에서도 메이오클리닉과 함께 이 병원 워크스루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창의적 아이디어 이끈 규제 완화

의료진은 “코로나19 사태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게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감염병 유행 상황을 맞아 정부가 예외조항을 인정한 것이 혁신의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병원 밖 진료를 허용한 선별진료소는 운영 초기 별다른 지침조차 없었다. 자율성을 인정하자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실험적 아이디어가 꽃을 피웠다.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2월 10일 차량형 진료소(드라이브스루)가 나왔다. 자가용이 없는 환자에게도 검사 속도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다 한 달 뒤 나온 것이 워크스루였다. 김 병원장은 “미국, 일본 등의 일부 지역에서는 새 진료실 모델을 도입하려 해도 규제에 걸려 시도조차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서울대병원이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생활치료센터를 업그레이드한 건 또 하나의 혁신 사례다. 먼 거리의 의사가 환자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원격모니터링 모델이다. 환자 몸에 붙인 의료기기 등으로 맥박, 심전도, 혈중산소포화도 등을 측정해 실시간으로 의료진에 전송하고, 이상이 있으면 경보가 울려 의료진이 찾아가도록 했다. 서울대병원은 이 시스템을 수출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혁신DNA 이어가는 것은 숙제

모처럼 불기 시작한 혁신의 DNA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코로나19 사태로 제한적으로 허용된 전화진료를 더 확대하기 위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환자 치료를 최우선에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시작된 의료·바이오 분야의 혁신을 가속화하려면 규제 완화 등 후속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정맥 환자의 심박수 등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규제 완화부터 시작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출시되는 심박동기는 데이터 전송 기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활용할 수 없다. 의사가 먼 거리에 있는 환자를 원격으로 진료하는 게 불법이기 때문이다. 최기준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심장에 넣는 심박동기를 국내에서 사용할 때는 데이터 전송 기능을 끈다”며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격진료를 활성화하려면 환자를 원격으로 진료한 뒤 치료비를 받을 수 있는 체계도 갖춰야 한다. 방문석 교수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등의 재활을 위해 원격진료 모델은 필요하다”며 “단순히 규제 완화를 논의하는 단계를 넘어 진료비 등 실질적인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