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 키운 건 정치권인데, 막는 건 기업이 하라니…"
인터넷은 ‘순위’가 지배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물건을 사고, 뉴스를 읽고, 음악을 고르고, 음식을 시킬 때 모두 높은 순위에 끌린다. 순위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게 매크로(자동화) 프로그램이다. 사용자가 직접 댓글과 후기를 적는 대신 컴퓨터 프로그램이 대량의 글을 작성하도록 해 순위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다. ‘드루킹’ 김동원 씨의 댓글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이 세간에 가장 잘 알려진 매크로 프로그램이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제2의 드루킹을 막기 위해 관련 법 개정에 나섰지만 인터넷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여야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일명 실검법)’에 잠정 합의했다.

부당한 목적으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을 처벌하고, 인터넷 기업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막을 의무를 부과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드루킹을 낳은 정치권이 사업자에게 오히려 책임을 떠넘긴다”고 지적한다.

“기업 활동과 표현의 자유 위축될 것”

인터넷 기업들은 사업자에게 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건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게시판, 댓글 조작으로 인한 서비스 신뢰도 저하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해당 인터넷 기업인데 법률적 의무까지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이번 개정안에는 애초 논의된 것으로 알려진 사업자 처벌 규정은 빠졌다. 부당한 목적으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만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처벌 규정이 빠진 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의무조항을 근거로 만들어지는 정부의 각종 조치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인터넷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법률적 의무가 부과되면 매크로 프로그램을 잡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인터넷 기업들이 국내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외국 인터넷 기업들보다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시민단체 오픈넷은 지난 8일 논평을 내고 “개정안은 인터넷 사업자가 이용자들의 행태를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검열하게 한다”며 “일반 국민인 이용자들의 인터넷상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개정안의 입법 취지가 여론 조작을 막는 데 있으나 업계는 법률 적용 범위가 넓어질 것을 우려한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으로 음원 순위, 영화 후기 등 많은 인터넷 서비스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총선 앞두고 몸 사리는 포털들

네이버·카카오 등 포털 기업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실시간 검색어(실검) 등 서비스 개편 작업을 하고 있다. 네이버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사용자 관심사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이용자 연령대의 관심사를 먼저 볼 수 있도록 했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으로 서비스하던 ‘실시간 이슈’를 중단했고, 다음의 실시간 이슈 검색어 서비스도 2월에 없애기로 했다.

박성호 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최근 인터넷 기업들도 서비스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입법 대신 자율규제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