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지난해 우후죽순 늘어난 중소형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기획 파산'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법무법인(로펌)에 폐업 절차를 문의하는 거래소가 급증했다. 한 로펌 변호사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폐업 문의 전화가 이달 들어 이틀에 한 번 정도 오고 있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지난해 10월 코인이즈가 NH농협은행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한 "거래소들의 집금계좌(벌집계좌) 이용을 막아선 안 된다"는 판결을 계기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당초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 도입으로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외의 거래소들에는 실명 가상계좌 발급이 금지됐었다. 때문에 거래소들은 법인 계좌에 고객 자금을 받고 별도 장부에서 이를 관리하는 벌집계좌를 사용해왔다. 이 벌집계좌는 고객의 개인 계좌가 구분되지 않는 데다 악용할 경우 자금 세탁이 용이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본안 판결 전까지 벌집계좌 이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에 따라 이를 막을 근거가 사라지면서 자연히 벌집계좌를 이용하는 신규 거래소가 급증했다. 업계는 국내 거래소가 약 300개 내외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들어 폐업이 잇따르고 있는 것. 코인네스트, 트래빗, 비트키니 등이 서비스 종료를 밝혔다. 주로 암호화폐 시장 냉각, 정부 규제로 인한 사업상 어려움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들에 앞서 코인빈도 정부의 가상계좌 발급 금지 조치로 인한 운영의 어려움, 암호화폐 시장 냉각에 따른 부채 급증 때문에 폐업했다고 밝혔다.

이들을 바라보는 업계 시각은 곱지 않다. 일부 거래소의 경우 이용자들 투자금을 횡령하고는 시장의 어려움과 정부 규제를 핑계로 '기획 파산'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다. 트래빗은 거래 은행에서 트래빗 법인 계좌 잔고가 많지 않다고 밝히며 횡령 의혹이 불거졌다.

최근에는 경북 안동에 위치한 거래소 인트비트 경영진이 이용자 투자금을 챙겨 도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체포된 인트비트 대표는 이용자 투자금 중 10억원 가량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탑비트의 경우 정부 규제로 인한 경영난에 대표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용자들에게 알렸지만, 이후 건강하게 발견됐다.

업계는 금융 당국이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법제화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이를 핑계 삼아 이같은 기획 파산에 나서는 거래소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해킹으로 인한 파산, 대표 자살 등 자극적 소동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비트코인 가격 급등에 따라 검증되지 않은 거래소와 프로젝트들의 ‘먹튀’ 우려가 더욱 높아졌다"며 "일부에서 파산을 위해 대표 사망설 등 자극적인 이유를 들고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합리적인 명분을 더해준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