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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30~40년에 이르는 대기업 오너에게 중장기 목표를 물으면 십중팔구 “100년 기업”이란 답이 돌아온다. 위대한 기업의 조건 중 하나를 ‘장수’로 판단한 것이다. 기업이 100년간 살아남는 건 희귀한 일이다. 1955년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중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기업은 12%뿐이다. 100년으로 스펙트럼을 넓히면 생존 기업 비중은 더 줄어든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은 셈법이 다르다. 이들에게 ‘수명’은 중요한 지표가 아니다. 시장에서 오래 버티는 것보다 비싼 가격을 받고 빨리 지분을 파는 게 낫다고 보는 창업자가 많다는 얘기다. 창업 초기부터 대기업 인수합병(M&A)을 염두에 두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특정 사업부를 갈아 끼울 대체재가 있으니 빨리 사가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

스타트업계에서는 ‘엑시트’란 용어를 쓴다. 창업주가 기업공개(IPO)나 M&A를 통해 회사를 키운 데 따른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을 뜻한다. 한국은 스타트업 투자가 활발하지만 엑시트가 쉽지 않은 나라로 꼽힌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스타트업은 45억달러(약 5조341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지난 7년간 연평균 투자액 증가율이 106%다. 매년 두 배 이상씩 투자액이 늘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엑시트에 성공한 곳은 많지 않다. 2013~2015년 초기 투자를 받은 138개 한국 스타트업 가운데 엑시트에 성공한 곳은 5.8%인 8개사뿐이었다. 같은 기간 미국은 12.3%의 기업이 엑시트에 성공했다.

한국 스타트업의 엑시트가 쉽지 않은 것은 M&A에 보수적인 국내 기업의 성향 탓이다. 미국은 전체 스타트업 엑시트의 80% 이상이 M&A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국에서 M&A 엑시트 비중은 3%(2018년 한국벤처캐피털협회 발표 기준)에 불과하다.

IPO도 쉬운 게 아니다. 미국 등 주요국에 비해 상장 요건이 까다롭다. 스타트업이 IPO에 이르기까지 10년 넘게 걸리는 게 일반적이다. 전체 스타트업 엑시트 중 IPO가 차지하는 비중은 22% 선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