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93년 유한양행, 無적자 경영·사회 공헌 모델이 된 '국민 기업'

봄이 되면 가장 먼저 녹색 잎을 보이는 버드나무는 상서로운 생명을 의미한다. ‘버들표’가 유한양행의 상징이 된 이유다. 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유한양행이 한국에 뿌리내린 지 93년째가 됐다. 기업의 평균수명은 S&P500 기준으로 1958년에는 61년, 1980년에는 25년, 현재는 20년에도 못 미친다. 기업 평균 수명의 5배에 달하는 시간 동안 유한양행은 국내 대표 제약사로 자리매김해왔다.
경기 용인에 있는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경기 용인에 있는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기업 경영의 모범 사례

창업자 유일한 박사.

창업자 유일한 박사.

1925년 21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청년 유일한은 일제 강점기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고 이듬해인 1926년 유한양행을 창업했다. 국민이 건강해야 주권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의약품은 한약재나 한약을 매약화한 것이 주종이었다. 양약을 수입하려면 일본의 면허나 허가가 필요했고 일본 회사가 우선순위였다. 유한양행은 어려움 속에서도 의약품 수입을 독점하던 일본 상사들과 경쟁했다. 민중 사이에 만연하던 피부병·결핵·학질·기생충 감염 치료제를 비롯해 소독제·위생재료·혈청·백신 등 의약품을 보급했다. 수입 의약품의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체 생산에도 뛰어들었다. 1933년 자체 1호 개발품인 ‘안티푸라민’이 탄생했다. 이를 시작으로 구충제·피부병약을 제조, 판매하기 시작했다.

1936년에는 제약공장과 실험 연구소를 경기 소사에 건립하고 회사 형태를 주식회사로 변경했다. 1937년부터 중국, 베트남 등에 위장약·구충제·결핵치료제를 수출했다. 만주를 비롯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에 해외 지사와 공장, 출장소도 세웠다. 중국인, 일본인, 러시아인이 근무하는 다국적 기업이자 글로벌 1세대 기업이었다.
1969년 44기 주주총회에서 유일한 창업자(오른쪽)가 전문경영인 조권순 사장에게 경영권을 이양하고 있다.

1969년 44기 주주총회에서 유일한 창업자(오른쪽)가 전문경영인 조권순 사장에게 경영권을 이양하고 있다.

1969년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조권순 사장에게 사장직을 물려주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다. 1971년 타계하면서 전 재산을 공익법인인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현재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의 전신)’에 기부했다. 기업의 최대주주가 공익재단이 돼 기업 이윤을 사회로 환원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는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다. 회사 수익은 배당을 통해 재단과 학원으로 유입된다. 기업 이익이 사회적 이익 증대로 이어지는 유한양행의 사례는 국내 최초 ‘기업의 사회적 책임 모델’로 평가받는다.

업계 최초 매출 1조원 시대 개척

유한양행은 1979년 현대적 생산시설을 갖춘 안양 공장을 준공했다. 1985년 4월 국내 최초로 KGMP(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기준)의 적격업체로 지정받았다. 1970~1980년대에는 국제화시대에 발맞춰 합작투자 법인인 유한킴벌리, 유한 크로락스, 유한 스미스 클라인, 유한 사이나미드, 한국얀센 등을 설립해 기업의 고속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1990년대는 자체 개발한 기술을 미국과 일본에 수출하고 인도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해 체계적인 제약사로 발돋움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2005년 경기 용인에 중앙연구소, 2006년 충북 청주(오창)에 신공장을 준공해 최고의 시설과 기술을 갖춘 제약회사로 거듭났다.

2013년 제약업계 매출 1위 기업으로 올라선 유한양행은 2014년 업계 최초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100년 역사를 지닌 국내 제약산업의 전체 매출은 20조원 규모다. 매출 1조원 제약사의 출현은 제약산업이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기초 체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1조5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6년 연속 업계 1위 기업에 올라섰다.
지난해 유한재단 장학금 수여식에서 한승수 이사장(오른쪽)이 장학생들에게 장학 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지난해 유한재단 장학금 수여식에서 한승수 이사장(오른쪽)이 장학생들에게 장학 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운명공동체적 노사 문화

유한양행은 ‘주인 없는 회사’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1969년부터 창업주의 뜻에 따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가 오래 유지됐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공채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경영을 맡아왔다. 임직원 누구에게나 CEO가 되는 길이 열려 있다. 그러나 오너가 없다고 해서 주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한양행은 임직원 1800여 명 모두가 주인이라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 같은 주인 의식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유한양행은 1937년 주식 일부를 종업원에 나눠주는 종업원 지주제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1998년, 2002년에는 상장사로는 처음 임원은 물론 일반 직원에게도 스톡옵션을 나눠줬다.

유한양행은 창업 이후 노사 분규를 한 번도 겪지 않았다. 1975년에 노동조합이 생겼지만 ‘노사관계’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는다. 전문경영인인 사장도 똑같은 직원이기에 ‘노노관계’로 표현한다. 경영진은 분기마다 경영 실적과 향후 계획을 노조에 설명하고 공유한다.

유한양행은 창업 이후 무(無)적자 경영을 이어왔다. 1926년 설립(1936년 주식회사 전환) 이후 6·25전쟁 기간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매년 업계 최고 수준의 배당을 통해 최대주주인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 다양한 목적사업과 교육, 장학사업 등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경영시스템이 정착돼 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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