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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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유한양행은 국내 제약사 중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전체 매출에서 수입 의약품 판매가 차지한 비중이 70%였다. 다른 제약사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매출 규모에 큰 의미를 부여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4년 뒤인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국내 제약사는 5개로 늘었다. 이 중 한미약품은 매출의 93.3%를 자체 개발 제품에서 거뒀다. 1조원을 목전에 둔 셀트리온도 독자 개발한 바이오시밀러가 주요 매출원이다. ‘수입약 도매상’에 불과했던 국내 제약사들이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로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K바이오, 과감한 R&D 투자로 '수익 구조' 확 바꿨다
수익구조 바뀌는 제약산업

국내 제약산업의 수익구조가 바뀌고 있다. 그동안은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한 대형 품목의 판권을 가져오느냐에 따라 매출이 좌우됐다. 2016년 종근당이 글리아티린과 자누비아 판권을 대웅제약으로부터 가져오면서 매출 순위가 뒤바뀐 것이 예다.

판매 수수료를 놓고 출혈 경쟁이 벌어지다 보니 수입약을 많이 팔아도 수익을 남기지 못하는 구조였다. 제약사의 R&D 경쟁력과 매출 규모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게 제약업계의 정설이었다. 매출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외형을 유지하기 위해 신약 개발보다 영업과 마케팅에만 치중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최근에는 이 같은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수입약으로 벌어들인 돈을 R&D에 투자해 성과를 내는 회사가 늘고 있어서다. 국내 제약업계 매출 1위인 유한양행은 지난해 굵직한 기술 수출을 이뤄내면서 국내 제약산업의 체질 개선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유한양행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1조5188억원으로 전년보다 3.9% 늘었다. 유한양행은 작년 11월 얀센에 비소세포폐암치료제 레이저티닙을 기술 수출하면서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 5000만달러(약 550억원)를 받았고 길리어드사이언스에 기술수출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를 통해서도 계약금 1500만달러(약 170억원)를 확보했다.

올해부터 기술수출한 신약 개발이 가시화되면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등 추가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수입약 매출 비중도 과거 70%에서 50%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수입약 판매가 신약 개발에 비해 저평가받았지만 유한양행의 기술수출 이후 다양한 제약 영업마케팅 경험이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본격화되는 R&D 성과

한미약품은 수입약에 의존하지 않고도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조16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8% 증가했다. 상위 10위 제약사 중 매출 성장률이 가장 높았다. 아모잘탄, 로수젯, 에소메졸 등 자체 개발 제품이 성장을 견인했다. 자체 품목이 대부분이다 보니 영업이익률도 8.2%로 다른 제약사들보다 높다. 업계는 한미약품이 염 변경 개량신약 기술로 내실을 다진 덕분에 두 자릿수 이상 지속적인 매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복제약 판매로 수익을 냈던 중견 제약사들이 오픈이노베이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JW중외제약은 창사 이래 첫 기술수출에 성공하면서 190억원의 기술료 수익을 거뒀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64억원으로, 전년 대비 21.7% 증가했다. 부광약품은 지난해 8월 위암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성분명 아파티닙) 권리를 에이치엘비생명과학에 400억원에 양도하면서 지난해 35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년 대비 다섯 배가 넘는 금액이다.

제약업계는 기술수출 외에도 올해부터 국산 의약품의 해외 진출로 매출 성장세가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국산 의약품은 4개였지만 올해는 최대 8개가 허가를 받을 예정이어서다. 대웅제약은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의 FDA 허가를 받아 미국 출시를 앞두고 있다. 셀트리온은 ‘허쥬마’와 ‘트룩시마’ 판매가 미국에서 본격화될 예정이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우리나라 혁신형 제약기업 43곳이 올해 신약 R&D에 전년보다 20% 이상 증가한 1조7617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며 “매출 1조원 돌파를 기점으로 국내 제약사들의 R&D 투자가 늘어 국내 제약산업이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 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