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개발자 교육기관 ‘에콜42’
프랑스 개발자 교육기관 ‘에콜42’
정해진 학기도, 교수도, 졸업장도 없다. 출석 체크도 안 한다. 학생이 희망하면 집에 가지 않고 하루 종일이라도 학교에 머물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양성을 목적으로 2013년 프랑스 파리에 설립된 교육기관 에콜42(Ecole42)의 운영 방식이다. 이곳은 자기주도 학습을 기반으로 교육이 이뤄진다. 아무 PC에 앉아 클라우드에 접속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관심 분야를 공부한다. 18~30세 사이면 전공과 관계없이 학생이 될 수 있고 학비도 무료다.

경직된 학제가 개발자 양성의 걸림돌

에콜42 설립자는 프랑스 이동통신사 프리모바일의 그자비에 니엘 회장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양성을 기치로 내걸고 사비를 털어 설립했다. 기업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당장 기업현장에서 통하는 코딩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실무능력만 보면 공과대학 졸업자를 넘어선다는 게 현지 기업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개발자 구인난은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개발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주요 선진국은 대학의 소프트웨어 교육 관련 정원을 늘리고, 에콜42와 같은 대안 교육기관을 세우는 등 다양하게 대응하고 있다.

한국은 개발자 공급을 늘리는 작업이 더디다. 경직된 학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국내 대표 교육기관인 서울대의 컴퓨터공학부 정원은 55명이다. 14년째 그대로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35명 줄었다. 정부가 전체 정원을 통제하는 데다 학과 간 정원 경쟁도 치열해서다. 사립대학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정원에 손을 대면 학생을 빼앗기는 학과의 이해관계자들이 곧바로 ‘실력 행사’에 나선다.

기업들의 수요와 학생의 희망에 맞춰 유연하게 학과 정원을 조절하는 대학은 KAIST 정도다. 2학년이 되면 자신의 희망에 따라 전공을 고른다. 2019학년도엔 개발자를 육성하는 전기 및 전자공학과(174명)와 전산학부(157명)가 인기다. 두 학과를 지원한 인원은 2009년의 세 배 수준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에콜42를 벤치마킹한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단시일 내에 대학 학제를 바꾸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해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전문 교육기관을 신설하기로 했다.

정부 예산으로 올 하반기에 설립되는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2년제로 정원이 2500명이다. 학력이나 전공 제한 없이 학생을 선발해 코딩교육에만 집중한다는 점은 에콜42와 똑같다.

기업들은 “취지엔 공감하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교육기관의 설립 주체가 정부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낙하산으로 교육기관을 맡게 된 인물이 자율성과 철학을 갖고 학교를 운영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에콜42는 정부 예산을 포함한 외부 지원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있다. 외압을 받을 수 있는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외국인 ‘비자 허들’도 낮춰야

글로벌 개발자의 블랙홀로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정통 미국인’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너제이에 이르는 베이지역 기술 노동자의 57%가 외국인일 만큼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이 뒤섞여 있다.

대다수 외국인 개발자는 전문직 취업비자(H-1B)를 받고 미국에 들어온다. 매년 6만5000명을 유치하는 비자 할당(쿼터)이 있으며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 2만 명을 별도로 뽑는다. 전체 H-1B 소지자 중 70~80% 안팎이 IT업계로 유입되고 있다.

실리콘밸리 최고경영자(CEO)들은 문호를 지금보다 더 넓힐 것을 주장하고 있다. 브렉스 헨리크 두부그라스 CEO는 최근 미국 IT 전문지 테크크런치와의 인터뷰에서 “비자로 외국인 유입을 제한하면 유능한 인재들을 다른 나라에 빼앗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도 H-1B에 해당하는 E7 비자가 있지만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은 활용이 쉽지 않다. 한국인 다섯 명을 고용해야 외국인 한 명을 뽑을 수 있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업계에선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IT 인력에 특화한 비자를 별도로 도입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개발자 구인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의 덩치가 커지면 내국인 고용도 늘어난다는 논리다.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역업체에 입사하는 외국인용 D9이 특정 업종에 발급하는 대표적 비자로 꼽힌다.

송형석/윤희은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