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투표소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을 통해 대선이나 총선 투표를 할 수 있다.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는 서류를 생략한 ‘원스톱 거래’를 한다. 신분 증명이 필요할 땐 스마트폰으로 인증받은 전자신분증을 쓰고, 주유소에 가면 특별한 결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주유량만큼 자동으로 결제가 된다. 블록체인의 파생 기술인 스마트 콘트랙트(smart contract) 기술 도입으로 나타날 불과 몇 년 후의 모습이다.
어서와~ 스마트 콘트랙트는 처음이지
계약 사기 걱정 없이 빠르게 거래

블록체인의 특징은 탈중앙화다. 계약 참가자 전원에게 정보가 똑같이 공개된다. 기존에는 금융거래를 할 때 금융회사가, 신분을 증명할 때 인증받은 신분증이, 수출입을 할 땐 무역회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이 같은 수단이 없어도 투명한 거래가 가능하다. 블록체인에 보관해둔 기록을 필요할 때 자유롭게 꺼내 쓰면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대형 도서관에 각자의 기록을 보안 형태로 맡겨 놓고, 당사자 동의 아래 그 기록을 꺼내서 확인한다고 보면 된다.

스마트 콘트랙트의 장점은 편의성에 그치지 않는다. 중고차를 거래할 때 계약금을 요구받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상대가 약속대로 차를 인도할지 계약금만 받고 잠적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계약의 시행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마트 콘트랙트는 사전에 입력된 계약 내역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집행한다. 블록체인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는 한 계약 사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해외에선 스마트 콘트랙트를 실무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큐사인과 비자는 자동차 렌털 서비스에 스마트 콘트랙트를 결합했다. 시운전한 자동차가 마음에 들면 다른 서류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차 안에 있는 스마트 콘트랙트 시스템으로 계약할 수 있다.

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선 스마트 콘트랙트의 위력이 더 커진다. 미국 은행 웰스파고와 호주의 목화솜 제조업체 브리그한코튼은 스마트 콘트랙트와 사물인터넷(IoT)을 결합한 거래를 시작했다. 스마트 콘트랙트를 통해 거래를 체결하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통해 운반 현황을 추적한다. 물건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거래 업체에 돈이 지급된다. 거래와 배송에 관련된 인력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웰스파고의 설명이다.

한국에서도 지난해부터 스마트 콘트랙트를 활용한 각종 정부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블록체인을 접목한 온라인 전자투표 시스템을, 농림축산식품부는 블록체인 기반의 축산물 이력관리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공인중개사 등과 연계해 부동산 거래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플랫폼을 시범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22년이 되면 글로벌 기관 중 25% 이상이 스마트 콘트랙트를 사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무인 거래가 일상인 ‘스마트시티’ 눈앞

스마트 콘트랙트 기술의 종착점은 스마트시티다. 모든 스마트 콘트랙트 기술이 집약된 것으로, 도시 전체가 각종 거래를 간소화·무인화 형태로 진행한다.

중국 완샹그룹은 이르면 2023년 항저우 인근에 인구 9만 명의 블록체인 스마트시티를 건설할 계획이다. 도시 내 모든 시설이 자동화되고, 출생·사망증명서 발급이나 투표 절차 등이 블록체인으로 이뤄진다. 스마트 기계끼리 직접 소통하면서 거래나 공장 관리도 무인화한다.

국내에서도 스마트시티 구축 사업이 한창이다. 지난해 12월 세종시와 부산시가 대표 시범도시로 선정됐다. 세종시는 드론·로봇을 활용한 각종 물류의 실시간 배송과 IoT 기반의 응급의료가 가능한 도시 모델을 기획했다. 블록체인으로 각종 개인정보를 관리하며 일명 ‘세종코인’으로 불리는 가상화폐를 도시 안에서 사용할 수 있다.

부산은 시민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블록체인 플랫폼 ‘스마트시티 1번가’를 통해 도시 발전을 실시간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투명한 물 관리가 가능한 ‘스마트 물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맞춤형으로 교통신호를 제어하거나 지능형 폐쇄회로TV(CCTV)를 도입하는 등의 계획도 포함됐다.

스마트시티 모델이 얼마나 빨리 자리잡을지는 미지수다. 김용대 KAIST 교수는 “스마트 콘트랙트로 전환하는 게 유용한 분야가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고 플랫폼 완성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블록체인으로 구현하지 않아도 되는 플랫폼을 억지로 만들면 오히려 효율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