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SK텔레콤 사장(왼쪽)과 앤서니 탄 그랩 최고경영자(CEO)가 30일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에서 합작회사 그랩지오홀딩스 설립 협약을 체결한 뒤 대화하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왼쪽)과 앤서니 탄 그랩 최고경영자(CEO)가 30일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에서 합작회사 그랩지오홀딩스 설립 협약을 체결한 뒤 대화하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이 동남아시아 최대 승차공유 기업인 그랩과 손잡고 T맵을 기반으로 한 그랩 운전자용 내비게이션을 선보이기로 했다. T맵의 해외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SK텔레콤은 합작회사를 발판 삼아 동남아 지역에서 모빌리티(이동수단)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T맵 기술로 동남아 내비 제작

동남아 최대 승차공유 기업 그랩 '구글맵' 대신 'T맵' 택했다
SK텔레콤은 30일 서울 을지로 본사에서 그랩과 합작회사 그랩지오홀딩스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총 투자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수십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합작회사 최고경영자(CEO)는 그랩의 제럴드 싱 서비스총괄이, 최고기술책임자(CTO)는 SK텔레콤의 김재순 내비게이션 개발셀(cell)장이 맡는다. 본사는 싱가포르에 둘 예정이다.

그랩지오홀딩스는 1분기에 싱가포르에서 사용할 수 있는 T맵 기반의 그랩 운전자용 내비게이션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랩 운전자에게 고객 위치와 목적지까지 최적화된 길을 안내하고 차량정체 등 도로상황을 알려준다. 이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그랩이 서비스되는 동남아 전역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

SK텔레콤은 차량 및 도로 정보, 교통현황 등을 분석하는 빅데이터 분석 알고리즘과 초정밀 위치 측위 솔루션 등 T맵의 핵심 기술을 제공한다. 그랩은 동남아 각국의 차선, 신호등 같은 도로정보와 지도 데이터를 제공한다.

T맵은 국내 내비게이션 1위 서비스로 월평균 실사용자(MAU)가 1150만 명에 이른다. 2012년 설립된 그랩은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등 8개국 336개 도시에서 택시 오토바이 리무진 등으로 공유서비스를 하고 있다.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다운로드가 누적 1억3500만 건으로 글로벌 승차공유 업체 가운데 중국 디디추싱, 미국 우버에 이어 세계 3위다. 기업가치는 110억달러(약 12조3000억원)에 달한다. 작년 3월 SK그룹이 800억원대 지분투자를 하기도 했다.

동남아서 모빌리티 사업 확대

이번 업무협약은 그랩이 먼저 SK텔레콤에 제안해 이뤄졌다. 그랩은 그동안 구글맵을 이용해 운전자에게 내비게이션을 제공했다. 하지만 구글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수시로 바뀌는 동남아 도로상황을 바로 반영하기 위해 자체 내비게이션을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그랩이 지역 맞춤형 내비게이션을 만들기 위해 SK텔레콤에 합작사 설립을 요청했다”며 “T맵 기술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첫 사례”라고 밝혔다. 앤서니 탄 그랩 CEO는 “그랩은 매일 새로 생기는 도로를 추가하는 등 지역특화를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며 “SK텔레콤의 기술과 그랩의 데이터 결합이 이 같은 전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랩 전용맵과 내비게이션 서비스 확보 등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그랩과 성장 잠재력이 큰 동남아에서 자율주행, 정밀지도 등 모빌리티 사업을 추진하려는 SK텔레콤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텔레콤은 향후 그랩의 승차공유 사업과 그랩지오홀딩스의 ‘맵&내비게이션’ 서비스 노하우를 바탕으로 동남아에서 기업 대상(B2B) 신규 사업을 발굴한다는 방침이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앞으로 글로벌 모빌리티 사업에서 새로운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양측은 그랩 또는 합작회사의 한국 시장 진출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현재 한국에서 그랩 및 우버 같은 승차공유 서비스는 불법이다. 현행법상 가능한 카풀 서비스도 택시업계가 반발해 도입이 더디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합작회사 협약에도 한국 시장 진출과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다”며 “그랩도 한국에 진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고 강조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