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신약 개발 밑천인데"…정부 복제약값 인하 추진에 '속앓이'
“일괄적인 약가 인하는 제약바이오산업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습니다.”(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국내 제약업계가 제네릭(복제약) 약가 방어에 나섰다. 정부의 ‘제네릭 종합 대책’ 발표를 앞두고서다. 국내 주요 제약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지난 22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약가 제도 개편에 강하게 반발했다. 걸음마 단계인 한국 제약사들이 글로벌 제약사들과 경쟁하려면 제네릭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다른 나라 대비 높은 제네릭 약값이 오히려 제약사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약가 인하 성토장 된 제약 간담회

국내 제약사들은 자체 개발 신약이 거의 없어 제네릭에서 수익을 거두고 있다. 국내 제약사는 400여 개에 달하지만 국산 신약은 30개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해 발사르탄 사태가 터지자 제네릭 난립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왔다. 고혈압약 원료인 중국산 발사르탄에서 발암 가능 물질이 검출되면서 한국에서만 대규모 제네릭 회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회수된 발사르탄 복제약은 115개 품목에 달했다. 반면 다른 나라는 영국 5개 품목, 미국 10개 품목, 캐나다 21개 품목에 불과했다.

수많은 복제약이 양산된 원인으로는 공동·위탁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시험) 제도가 지목되고 있다. 생동시험은 복제약이 오리지널 제품과 안전성 및 효능이 같은지 확인하기 위해 시행하는 임상시험으로 수천만원이 든다. 그러나 이미 생동성을 인정받은 제조업소에 맡기는 공동 위탁 생동시험 제도를 통하면 별도 자료 제출 없이 복제약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쉽게 복제약을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공동위탁 생동시험제도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공동·위탁 생동시험제도 폐지 대신 참여 제약사를 제한하고 허용 품목을 원제조업소를 포함해 4곳(1+3)으로 줄이자는 대안을 내놨다. 그러나 제네릭 비중이 높은 중소 제약사들은 이마저도 반대하고 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염 변경 복제약

정부는 제네릭 약가 제도 손질도 고심하고 있다. 복제약 출시 순서에 따라 약가를 차등 결정하는 계단식 약가 제도부터 일괄 약가 인하 등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된 뒤 제일 먼저 출시되는 복제약 약가는 오리지널의 59.8%로 책정되고 1년 뒤 53.55%로 결정된다. 문제는 나중에 진입한 복제약도 최고가의 53.55%를 보장해준다는 데 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최초 출시 복제약 가격을 70~80% 보장해주고 이후에는 시장 경쟁을 통해 결정되도록 내버려둔다. 후발 제네릭은 최저가 이하로 출시돼 오리지널의 10% 수준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정부는 제네릭 가격을 인하하면 수익성 하락으로 한 개 품목에 수백 개의 제네릭이 양산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약업계는 제네릭 약가가 인하되면 R&D 투자를 비롯해 사업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염 변경 방식으로 특허를 회피한 복제약도 물질특허 침해로 인정하면서 제약사들은 제네릭사업 위축이 불가피해졌다. 지난 17일 대법원이 과민성방광 치료제 솔리페나신의 염 변경약물이 물질특허를 회피한다고 인정한 원심을 깨고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내면서다. 그동안 중소 제약사들은 물질특허가 만료되기 전 염을 바꾸는 방법으로 복제약을 만들어 시장에 조기 진입했지만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제네릭 가격 인하와 인허가 제도로 품목 수를 줄일 것이 아니라 제네릭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