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 조롱받던 에어팟…"없어서 못 판다"
귓불 밑으로 내려오는 흰색의 뭔가를 귀에 꽂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상대도 없는데 허공에 말을 하고 다녔다. ‘미친 것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2016년 말 애플의 블루투스 이어폰 ‘에어팟’이 나오자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콩나물, 담배, 샤워기, 전동칫솔, 보청기 같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가격은 22만원에 육박했다. 이번에는 애플이라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국내에서는 2년간 꾸준히 판매되다가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품절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 27일 일부 판매점에 제품이 들어오긴 했지만 이마저 대부분 팔려나갔다.

완판행진에 짝퉁까지

26일 서울에서 에어팟을 구할 수 있는 매장은 없었다. 국내 유일의 공식 애플스토어인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지점은 물론 백화점과 이마트 내 애플매장 모두 마찬가지였다. 24일 모두 품절됐다고 애플 관계자는 밝혔다. 연휴 선물용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마트의 경우 27일 1000개를 확보해 지점에 뿌렸지만 이틀 만에 소진됐다.

에이샵 관계자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애플 유통회사 프리스비도 전 지점에서 에어팟을 구할 수 없다. 28일 현재 애플스토어 가로수길 지점이 일부 재고를 확보하고 있다.

에어팟 품절 현상은 음악 시장에선 차트 역주행과 비슷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발표 후 계속 인기 없던 곡이 갑자기 인기가 폭발하며 차트 순위에 오르는 현상이다. 에어팟은 2년간 꾸준히 팔렸지만 화제가 된 적은 없었다. 이런 반전을 만든 티핑포인트는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이다. 위메프는 지난 10월22일 에어팟을 10만원 선에 파는 특가행사를 했다. 순식간에 다 팔리고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11월1일 11번가도 11만1111원에 팔았다. 1분 만에 매진됐다. 에어팟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보청기' 조롱받던 에어팟…"없어서 못 판다"
구글 트렌드로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에어팟 검색량은 10월 급증하며 연중 최고를 기록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비싼 가격대에 구매를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에어팟을 구입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며 “에어팟의 장점을 경험한 사람들이 주변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 연말 수요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만원대 짝퉁도

에어팟이 갑작스럽게 동나긴 했지만 그간 쌓인 호평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눈여겨보던 잠재 고객이 소셜커머스의 이벤트를 기점으로 적극적으로 구매에 나섰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2017년부터 온라인에는 “생각보다 귀에서 잘 빠지지 않고, 배터리도 오래가며, 음질도 괜찮다”는 평가가 꾸준히 이어졌다. 에어팟은 고가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만족도가 높은 제품이었던 셈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 기기와 쉽게 연결되는 데다 ‘무선’이 주는 편리함도 있었다. 한 에어팟 사용자는 “이어폰을 쓰다 꼬인 줄을 풀거나, 고가의 유선 이어폰이 단선되는 경험을 해봤다”며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은 이런 ‘불안’이 없기 때문에 다시 유선 이어폰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애플은 별도로 에어팟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는다. 한국도 정확한 판매량은 알 수 없다. 업계에서는 애플 재무제표 등을 토대로 올해 2800만 대의 에어팟이 세계에서 판매된 것으로 추정했다.

에어팟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2만원대 중국산 ‘짝퉁’도 등장했다. ‘차이팟(차이나+에어팟)’이다. 외관 및 기능 등을 베낀 제품으로 겉모양은 굉장히 비슷하지만 품질면에서 현저히 떨어진다는 평가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