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재 현장 합동감식 > 경찰, 소방 관계자들이 26일 서울 충정로 KT 아현지사 화재 현장에서 2차 합동감식을 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화재 현장 합동감식 > 경찰, 소방 관계자들이 26일 서울 충정로 KT 아현지사 화재 현장에서 2차 합동감식을 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지난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화재로 대규모 통신장애가 발생하면서 정부가 대책을 내놨지만 ‘뒷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점검하겠다고 제시한 통신시설 숫자와 통신회사가 파악한 숫자도 크게 차이 나는 등 기본적인 관리조차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통신사도 모르는 D급 통신시설 숫자

26일 과기정통부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전 배포한 자료를 통해 “피해가 광범위한 A~C급 80곳은 과기정통부가 전수 점검하고 있으며 그 외 D급 835곳은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점검해왔다”고 발표했다. 과기부는 주요 통신시설 전체를 대상으로 종합점검을 추진하고 통신사가 자체 점검하는 D급 통신시설도 점검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숫자와 통신사가 파악하고 있는 숫자는 크게 차이 난다. KT는 25일 광케이블 등 통신망을 관리하는 자사의 거점 통신국사가 전국에 56곳 있다고 밝혔다. 이 중 정부가 관리하는 A~C급이 29곳, KT가 관리하는 D급은 27곳이라고 분류했다.

LG유플러스는 A·B급이 16곳, C·D급에 준하는 통신국사가 10곳이라고 설명했다. SK브로드밴드는 A·B급만 7곳이라고 했다. 정부가 언급한 800곳이 넘는 D등급 시설에 대해선 공통적으로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와 관련한 과기정통부의 설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통신시설 등급관리 '엉터리'…D급 아현지사 사고에 서울 4분의 1 '마비'
사고 시 피해가 광범위해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A~C급 통신국사는 통신국사를 잇는 통신관로를 이중으로 연결한다. 이조차 법에 규정된 의무사항이 아니고 정부가 백업망을 깔도록 권고하는 수준이다. 각사가 관리하는 D급 통신국사는 백업체계 구축 의무가 없다. 이번 화재가 대규모 통신장애로 이어진 것도 통신관로에 불이 나면서 단선으로 연결된 케이블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아현지사 D등급 적절했나

통신시설에 대한 이 같은 등급 관리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통신시설 중요도를 나누는 기준은 시설 장애로 영향을 받는 지역 범위다. A급은 수도권, 영남권, 호남권 등 광역 권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B급은 광역시·도, C급은 3개 이상 시·군·구에 영향을 미치는 시설이다. D급은 단일 시·군·구에 영향을 미친다.

화재가 발생한 아현지사는 D급 통신국사다. 그러나 통신장애는 아현지사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는 물론 마포구, 중구, 용산구에 걸쳐 발생했다.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 덕양구 일부 지역에서도 장애가 일어났다. 16만8000개 유선회로와 광케이블 220조(전선 세트)가 설치된 ‘집중 통신국사’임에도 등급이 낮게 매겨졌다는 것이다.

KT 관계자는 “아현지사는 혜화, 구로 등 주요 통신국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주로 개인 또는 가정으로 나가는 회선이 많아 D등급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KT의 ‘새 노조’는 25일 성명을 통해 KT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과거 여러 곳에 흩어졌던 장비를 아현지사로 집중시켰고, 이 과정에서 백업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아 이번 사고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강홍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혜화, 구로 등 국가 거점기지국에 화재가 나면 국가 전체 인터넷이 마비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통신 3사 우회로 대책 현실성 낮아”

정부가 통신장애 재발 방지를 위해 내놓은 통신 3사 간 우회로 마련 대책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선통신은 이번 화재처럼 가정집으로 가는 케이블이 물리적으로 훼손되면 케이블을 다시 잇는 방법밖에 없다. 우회로를 만들려면 한 집에 두 곳 이상 기업의 케이블을 미리 설치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무선통신은 장애 발생 시 다른 회사의 무선 기지국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지만 이용자 개인정보와 단말기 고유번호 등을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한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번 통신장애 직후 KT가 이동기지국을 배치한 것 이상의 긴급수단을 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날 서울 종로구 KT 혜화지사에서 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와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유 장관은 “통신은 공공성을 지닌 공공재인 만큼 재해 및 유사시 통신 3사가 어떻게 공동 대응할지 논의할 것”이라며 “내일부터 관련 부처와 통신사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하고 연말까지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