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는 다가온 현실, 무조건 금지보다 불법행위 막는 규제 갖춰야"
“가상통화(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려면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가상통화 거래소도 금융기관 수준으로 데이터를 보관해 필요한 경우 원활한 수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경찰청 관계자들이 암호화폐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며 내놓은 발언들이다.

경찰청은 지난 13일 국회도서관에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홍익표 의원(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사이버안전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 마지막 세션은 ‘가상통화 관련 범죄에 대한 형사정책적 대응 방안’.

이 세션의 발제를 맡은 전현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원은 “거래소를 해킹해 가상통화를 탈취하거나 가상통화를 채굴하는 악성코드를 유포하는 등의 범죄가 이뤄지고 있다”며 “익명성이 높은 특징 때문에 마약·총기·불법 콘텐츠 거래, 자금세탁 등에도 가상통화가 사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암호화폐로 이뤄진 불법행위를 수사·처벌할 법적 근거가 모호한 점도 지적했다. 전 연구원은 “최근 범죄로 얻은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도 몰수 대상이 된다는 판결이 나오지만 추징 근거와 절차가 모호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어 “거래소 접속 기록 등 실시간 추적, 온라인 수색 등의 근거가 부족하고 개인 가상통화 지갑의 경우 비밀키를 확보할 방법도 없다”며 “가상통화와 거래소에 적합한 강제 수사를 허용하는 영장제도, 제도화된 가상통화 압수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경이 무의미한 암호화폐를 활용한 범죄의 경우 국제 공조수사가 필수적이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도 문제다. 전 연구원은 “유럽 사이버범죄방지협약과 같이 국제 기준에 맞는 형사절차법 도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관계자들은 암호화폐를 ‘불편하지만 인정해야 할 현실’이라며 적절한 규제 마련의 필요성에 의견을 모았다. 무조건적 금지는 실효성이 없을 뿐더러 규제 공백 탓에 범죄행위 수사도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상순 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위협분석팀장은 “고수익을 미끼로 한 허위 ICO(암호화폐 공개) 등 범죄 발생 우려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무조건 ICO를 금지하기보다는 불법행위를 막는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등과 달리 거래정보를 비공개하는 ‘다크코인’은 아예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가상통화 거래소는 성격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고 통신판매업 등으로 신고 후 영업하기에 투자자 보호, 보안요소 확충 등 업종 규제가 어렵다”며 “소관 부처를 명확히 하고 금융회사에 준하는 규제를 적용해 설립요건을 충족한 거래소만 영업을 허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병길 경찰청 사이버수사과 테러수사팀장도 “가상통화는 익명성이 높은 탓에 범죄 수사가 쉽지 않고 탈중앙화가 특성인 블록체인은 수사 협조를 요청할 대상도 마땅치 않다”고 토로했다. 암호화폐를 추적할 수 있는 정보는 암호화폐 지갑 주소와 전송량, 전송 일시가 전부라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대처가 어렵다는 의미다.

그는 “결국 가상통화 거래소가 금융기관에 준하는 정도로 다양한 자료를 수집·보관하고 경찰 수사가 이뤄질 때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며 “명확한 절차와 시스템을 만들어 수사관이 의심받지 않도록 해야 하며 탈중앙화 거래소에 대한 강제수사 권한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최근 투자자들의 암호화폐를 챙겨 잠적한 퓨어빗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이 팀장은 “사이버 범죄 수사는 해외 공조가 이뤄지는 사안이 많다. 수사 기반은 갖춰져 있어 모든 역량을 동원하면 빠르게 수사할 수 있으니 경찰을 믿고 맡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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