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따뜻한 인간의 손길을 가진 유전공학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붙이듯 생명체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유전자 가위’라고 불리는 생명공학 기술이다. 지난여름 미국과 중국 과학자들은 이 기술로 효모의 유전자를 편집해 키운 결과를 발표했다. 이 효모는 일반 효모처럼 별 탈 없이 생명활동을 했다. 한편 한국과 미국 연구진은 지난해 인간 배아의 유전자 교정에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만약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편집한 뒤 키우면 어떨까. 이렇게 ‘창조’된 인간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유전병 등 부정적 형질은 없애고 높은 지능처럼 긍정적 형질을 살린 ‘완전한 인간’을 만든다면 축복일까, 재앙일까.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가 쓴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는 생명공학의 최근 발전 동향을 알기 쉽게 소개한 책이다. 관련 전공자가 아닌 일반 대중을 상대로 썼기 때문에 기초부터 설명해 읽기가 쉽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3부는 합성생물학에 대해 개괄적으로 소개한다. 합성생물학은 생명체나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편집하는 것을 말한다. 4~7부는 합성생물학 중에서도 최근 각광받고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다룬다. 인간 유전자의 편집에 따르는 윤리적 쟁점도 정리했다. 8부는 암세포 등 병의 원인을 제거하도록 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한 뒤 이를 인체에 넣어 병을 치료하는 세포치료제 이야기다.

최근 생명공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인 ‘면역 세포 치료제’도 비중있게 다룬다. 저자는 “환자에게서 분리한 면역 세포를 암세포를 잘 공격하도록 변형시키거나 활성화해 환자에게 다시 주입한다”며 “암세포에 대한 환자의 면역 기능을 활성화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얻는다”고 설명한다. 기존의 화학 항암제는 암세포만 공격하지 않고 정상세포도 공격하기 때문에 환자가 탈모, 소화 장애, 기력 저하 등 부작용에 시달렸다. 반면 이 치료제는 자기 몸의 면역 세포를 이용하는 데다 암세포만 표적 공격할 수 있어 부작용이 없거나 적다는 장점이 있다.

유전공학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는 불확실하다. 화약, 증기기관, 나침반을 발명했어도 인간을 발명할 수 있다고 여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생소함 때문인지 유전공학의 미래는 종종 암울하게 그려진다. 권력자나 거대 기업이 일반 시민의 유전자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저자는 낙관론을 편다. 오히려 생명공학이 따뜻한 인간의 손길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유전병은 약 700개가 있다. 그중에는 연간 수천만~수억원에 이르는 약값을 내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것도 있다.

저자는 “과학자들은 질병 유발 유전자를 고쳐줄 ‘유전자 치료’를 꿈꾸면서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며 “인류가 유전체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유전병의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이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그는 “인류 역사에서 과학이 윤리적 쟁점 때문에 나아가기를 멈춘 적은 없었다”고 강조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