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두고 보자고 합니다. 그러다 1년이 흘렀어요. 언제까지 연구만 할 겁니까. 정부가 착각하는 거예요. 잘못된 결정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 결정도 안 내리는 겁니다.”

"1년간 허송세월…차라리 블록체인 규제라도 만들어 달라"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들이 정부의 ‘규제 공백’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쏟아내는 울분이다. 한국은 블록체인산업을 옥죄는 규제가 아니라 규제 자체가 없는 불확실성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거꾸로 기업인들이 사업의 허용 범위가 될 규제를 제정해달라고 요구하지만 당국은 관망하고 있다. 이처럼 분명한 잣대가 없는 상황인데도 기업들이 움직이면 바로 문제 삼겠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검찰이 올 5월 사기 등 혐의로 가상화폐거래소 업비트를 압수수색하고도 기소조차 못한 게 대표적 사례다.

업계가 바라는 모델은 싱가포르와 비슷하다. 싱가포르는 가상화폐공개(ICO) 가이드라인을 세워 블록체인 허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약한 규제’보다는 ‘확실한 규제’를 통해 블록체인기업이 합법적으로 사업할 수 있게 한다.

규제의 선후 관계를 바꿔달라는 업계 목소리도 높다. 우선 풀어놓고 정한 규제의 경계선을 넘으면 강하게 처벌하자는 것이다. 스위스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와 관련해 조상규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스위스 주크는 규제에 대한 관점이 우리와 다르다. 사례가 누적될 때까지 지켜본 뒤 가이드라인을 낸다”며 “한국은 아예 철망을 치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블록체인센터에 따르면 올해 한국 블록체인기업들은 ICO로 평균 1500만달러(약 170억원)를 모금했다. 출신국별 ICO 평균 모금액에서 압도적 1위다. 그럼에도 ICO 금지로 해외에 법인을 설립한 탓에 납세, 고용창출 효과는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권오훈 블록체인센터장은 “구체적인 ICO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해외에서 ICO한 경우에도 해당 가상화폐의 실질적 사용처가 국내라면 가이드라인을 적용받도록 해 국부 유출을 막자”고 제안했다.

김용범 오킴스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가상화폐거래소의 상장심사 요건 법제화 및 심사 결과 공개, ICO 백서 변경 시 공시 의무 부과 등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