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용도가 아니라 빵을 사먹는 것처럼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서비스를 내놓겠다.”

지난 13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블록체인 개발자대회.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를 이끌고 있는 한재선 대표는 이날 강연에서 자체 개발 중인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의 운영 방향을 소개하며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불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를 투기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은 것을 의식한 발언이다.
"블록체인 생태계 선점하라"… 네이버·카카오·KT도 '코인 경쟁'
실생활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대기업 코인’

비트코인 투자로 시작된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불면서 국내에서도 가상화폐를 발행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일반인 개발자로 구성된 소규모 개발팀이거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었다. 그나마 규모가 큰 기업은 ‘범현대가’로 분류되는 정대선 사장의 현대BS&C 정도였다. 이 회사는 지난해 스위스에서 ‘HDAC’란 이름의 가상화폐공개(ICO)에 나서 약 2500억원을 모집했다.

소수 기업이 주도하던 가상화폐 시장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올 하반기 들어서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정보기술(IT) 대기업이 참여하면서 가상화폐의 가장 큰 단점인 화폐의 신뢰성 문제를 극복할지 주목받고 있다.

네이버는 일본 자회사 라인을 통해 지난 4일 가상화폐 ‘링크’를 선보였다. 라인 계열 플랫폼에서 각종 콘텐츠 구매, 게임, 가상화폐 거래 등을 할 때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가상화폐다. 총 발행 규모는 10억 개. 이 중 발행처인 라인테크플러스가 2억 개를 보유한다. 라인의 링크는 기존 ICO에 나선 업체들과 달리 가상화폐를 발행하며 어떤 신규 자금도 유치하지 않았고 거래 과정에서 가상화폐의 가격변동폭도 최소화했다. 라인 생태계를 유지하는 화폐 기능에 초점을 맞춘 게 기존 업체들과의 차이점이다.

카카오도 내년 1분기 가상화폐 ‘클레이’를 발행할 예정이다. 발행과 활용 등 정확한 방식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카카오톡 내 ‘선물하기’ 기능을 이용하거나 이모티콘 구매, 카카오페이 결제 등에 클레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역 가상화폐도 등장… 텔레그램도 나서

KT도 올해 안으로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을 이용해 지역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상화폐를 발행한다. 발행 규모는 100억원이다. 지난 17일 김포시와 가상화폐 발행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올해 안에 적용에 나선다.

해외에서는 올 들어 텔레그램이 가상화폐 ‘그램’을, 일본 인터넷 쇼핑서비스업체인 라쿠텐이 ‘라쿠텐코인’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IT 대기업은 기존 사업에 가상화폐를 접목해 블록체인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해 이 같은 경쟁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가상화폐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가상화폐 관련 광고를 막았던 구글과 페이스북은 10월부터 미국, 일본에서 법규를 준수하는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광고를 허용하기로 했다.

가상화폐업계에서는 대기업들의 참여를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은 “가상화폐의 궁극적인 문제점은 느린 처리 속도와 범용성”이라며 “대기업들은 기술력이 뛰어난 데다 다양한 사용처를 확보하고 있어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대기업들이 발행한 가상화폐도 거래량이 늘어날수록 급격한 시세변동 이슈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가상화폐거래소 관계자는 “라인의 가상화폐 링크는 자체 거래소인 ‘비트박스’에서만 거래되고 있어 투기 목적의 가격 변동성 논란에서는 자유로운 상황”이라면서도 “앞으로 다양한 거래소에 상장될 경우 가격 급변동에 따른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