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호주 멜버른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산언어학회(ACL)’ 정기 학술대회장. ACL은 인공지능(AI)의 한 축인 자연어처리 분야에서 최고 권위의 학술대회로 꼽힌다.

이곳에서 연구결과 발표장 못지않게 열기가 뜨거웠던 쪽은 학술대회장 밖이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 미국 기업과 바이두, 텐센트, 화웨이, 징둥닷컴 등 중국 기업이 부스를 차려놓고 행사에 참석한 AI 인재들에게 구애하느라 각축전을 벌였다. 삼성전자와 네이버 등 한국 기업의 부스도 눈에 띄었다.

ACL 학술대회에 참석한 나승훈 전북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부족한 AI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세계 유명 학회를 저인망식으로 훑는다”고 전했다.
한국, AI 인력 1만명 부족… IT기업들 "해외 학술대회서 인재 훑어"
◆학계 인력 선점 치열해

기업들은 해외 AI 인력을 대거 영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채널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해외의 AI 학회라고 입을 모은다.

SK텔레콤은 지난 7월 스웨덴 ‘머신러닝국제학회(ICML)’에서 AI 전문가를 채용했다. 삼성전자는 해외 주요 학회를 1 대 1로 전담하는 임원이 현장에 파견돼 AI 인재를 영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는 돈을 들여 후원하는 글로벌 AI 관련 학회를 지난해 5개에서 올해 9개로 두 배 가까이 늘렸다. 네이버 관계자는 “세계 학계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기업 인지도를 높이고 우수한 인재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장소는 학회만한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세계 유명 대학이나 연구소와 협업하는 것은 AI 인재를 ‘선점’하는 전략이다. 구글은 2016년 캐나다 몬트리올대에 AI 연구소를 설립했다. LG전자도 최근 캐나다 토론토대와 함께 AI 전문 연구소를 열었다. 네이버와 엔비디아는 각각 홍콩과학기술대, 대만국립대와 AI 연구 관련 협력관계를 맺었다.

그런가 하면 삼성전자는 지난 7일 미국 뉴욕에 AI 연구센터를 추가로 신설했다. 이를 포함해 미국 캐나다 영국 러시아 등에 글로벌 AI 연구 거점을 여섯 곳이나 마련했다. 현지에서 AI 인재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거점이다.

◆경쟁사 전문가까지 영입

기업들은 같은 AI 인력이라도 ‘A급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명 학자가 특정 기업으로 옮기면 거기로 인재가 몰리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일명 ‘AI 4대 천왕’이라고 불리는 석학들이 대표적이다.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와 얀 르쿤 미국 뉴욕대 교수를 영입한 곳은 구글과 페이스북이다. 요슈아 벤지오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는 삼성전자 연구원들과 AI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앤드루 응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2017년까지 바이두의 AI 연구를 이끌었다.

경쟁사에서 AI 인재를 빼앗는 스카우트전도 치열하다. 애플은 지난 4월 구글의 존 지안난드리아 AI 총괄부사장을 영입했다. 구글은 2월 삼성전자에서 AI 비서 ‘빅스비’를 개발한 이인종 부사장을 데려갔다.

삼성전자도 작년 MS에서 래리 헥 박사를 스카우트했다. SK텔레콤은 2월 애플에서 시리 개발을 담당한 김윤 전무를 AI리서치센터장으로 임명했다.

◆턱없이 부족한 AI 인력

글로벌 기업들이 AI 인재 확보전을 벌이는 것은 자국 내 인력이 부족해서다. 텐센트가 내놓은 ‘2017 글로벌 AI 인재 백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필요한 AI 인력은 100만 명에 달하지만 공급은 30만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수영 KAIST 인공지능연구소장은 “글로벌 인재들이 몰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조차 ‘AI’라고 발음할 줄만 알면 채용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라며 “한국 내 AI 인력난은 더욱 심각하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2022년까지 5년 동안 국내 AI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이 9986명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 석·박사급 인력은 7276명 모자랄 것으로 내다봤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