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정체성을 압축한 것이 바로 사명(社名)이다. 창업자들이 회사 이름을 정하기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이유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바닥에선 각양각색의 개성 넘치는 작명법을 유독 많이 볼 수 있다.

인공지능(AI)을 연구하는 스캐터랩(ScatterLab)과 스켈터랩스(SkelterLabs). 두 스타트업은 이름은 물론 사업 영역까지 비슷해 업계 관계자들을 종종 헷갈리게 한다. 하지만 사명의 의미와 창업자의 배경은 꽤 차이가 있다.

2011년 창업한 스캐터랩은 뿌린다는 뜻의 영어 단어(scatter)에서 따온 이름이다. 의미 있는 결과물을 세상에 널리 확산시키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2015년 문을 연 스켈터랩스는 비틀스의 곡 ‘헬터 스켈터’와 관련 있다. 헬터 스켈터는 1960년대 놀이동산의 미끄럼틀 놀이기구 이름인데, 비틀스 노래답지 않게 빠른 편이다.

구글코리아 연구개발(R&D) 총괄사장을 지내고 다시 AI 창업에 뛰어든 조원규 대표는 “위험해 보이지만 재밌고 짜릿한 경험이라는 점이 스타트업과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해 사명에 넣었다”고 했다.

벤디츠(Venditz)와 벤디스(Vendys)는 사명만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스타트업이다. 2014년 설립된 벤디츠는 물류 서비스 ‘이사모아’가 주력 사업으로, 모험(venture)하는 바보(ditz)라는 뜻을 담았다. 같은 해 문을 연 벤디스는 모바일 식권 ‘식권대장’을 운영하는 업체인데, 멀티 벤더 같은 종합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정체성을 반영한 이름이다.

렌딧(Lendit)과 렌팃(Rentit)도 이름은 ‘점 하나’ 차이지만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 렌딧은 중금리 신용대출로 유명한 금융 스타트업이고, 렌팃은 사무실 매물정보에 특화한 부동산 스타트업이다.

AI 교육 스타트업 뤼이드(Riiid)는 제거한다는 뜻의 영어 단어(rid)를 재치 있게 변형했다. 기술 혁신으로 사교육시장의 병폐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혼합현실(XR) 레이싱 게임을 개발한 WRD는 연결된(wired), 기이한(weird), 세상(world)이라는 세 단어에서 공통된 알파벳을 뽑아낸 것이다. 현실과 가상을 잇는 신기한 경험을 선보인다는 철학을 담았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