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가 영국 런던과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주춤하는 사이 스타트업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런던의 매력이 크게 떨어지고 실리콘밸리의 부동산 가격이 계속 치솟는 상황에서 프랑스가 법인세를 내리고 다양한 지원책을 쏟아내자 기업들이 파리에 느끼는 매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높아졌다.

스타트업의 핵심 인력인 엔지니어와 개발자들도 파리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프랑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작년 5월 취임과 동시에 “프랑스를 유니콘(시장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의 나라로 만들겠다”며 다양한 육성책을 내놨다.

그중 하나가 테크 기업의 창업주와 임직원, 투자자들에게 작년 4년짜리 특별 취업·거주 허가를 제공한 것이다. 지금까지 1000명가량의 외국인 기업가와 개발자들이 이 혜택을 받았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스타트업 육성 시설 '스테이션F' 내부 모습. 스테이션F 제공
프랑스 파리에 있는 스타트업 육성 시설 '스테이션F' 내부 모습. 스테이션F 제공
작년 6월 프랑스는 파리 13구 센 강변의 1920년대 철도기지 건물을 개조한 스타트업 육성시설 ‘스테이션F’를 개관하기도 했다. 최대 1000개 스타트업이 입주할 수 있는 3만4000㎡ 규모의 이 시설에는 페이스북·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 등 거대 IT 기업들이 직접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프랑스는 또 법인세를 내려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여준 데 이어 국가가 가진 공기업 지분을 매각해 총 100억유로(약 13조5000억원) 규모의 벤처·스타트업 육성 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각종 지원책으로 파리에 소재한 기업들의 수익성도 크게 개선돼 런던을 턱밑까지 추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주요국 도시별로 과거 3년간 가장 빠른 수익성장률을 보인 기업 수를 집계한 ‘FT 1000’ 리스트에는 올해 런던이 74개, 파리는 62개 올랐다.

이 리스트에 오른 런던과 파리의 기업 수 격차는 한 해 전에는 33개였지만, 1년 만에 12개로 줄었다. 그만큼 파리에 근거지를 둔 기업들의 수익 성장세가 런던보다 상대적으로 가파르다는 뜻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풍부한 대신 이를 계속 유지해 기업의 장기적 성장 가능성을 발전시키는 데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애플의 아이팟(iPod) 개발에 참여했으며 현재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에 매각된 네스트랩스를 공동창업한 토니 파델은 FT와 인터뷰에서 “프랑스는 외국인들을 받는 데 탁월해졌다”며 “하지만 외국인 기업가들을 계속 잡아두려면 더 많은 것들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2016년 미국에서 파리로 이주해 현재 스테이션F에서 벤처캐피털을 운용하고 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