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전체 분석기업 메디젠휴먼케어는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에서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검사(DTC) 서비스 ‘멜시 아시아’를 판매하고 있다. 탈모 피부건강 등 미용과 관련된 검사는 물론 골절위험도 등 운동능력, 소아당뇨병 등 소아질환과 관련된 유전자 검사도 제공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중 일부만 서비스한다. 피부 노화, 탈모 등 12개 항목으로 서비스를 제한하고 있어서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은 검사 가능 항목 수가 너무 적어 시장이 커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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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된 유전자분석 시장

정부가 ‘갈라파고스식 규제’로 DTC 시장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 민간 유전자분석업체에 DTC 서비스를 허용했지만 검사 가능 항목에 엄격한 제한을 뒀다. 체질량지수, 피부 노화, 모발 굵기 등 12개 항목과 관계된 46개 유전자만 검사할 수 있도록 했다. 특정 항목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DTC산업을 키우기 위해 규제를 최소화하고 있다. 영국 중국 등은 DTC 가능 항목을 아예 제한하지 않는다. 미국은 검사 가능 항목을 약 30개로 제한하고 있어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난다. 유방암 희귀질환 등 중대 질환에 대한 유전자검사를 허용해 소비자 호응이 높은 편이다.

세계 DTC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지난해 1300억원이던 시장 규모는 올해 1700억원으로 커지고 2020년에는 4100억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DTC와 연계된 맞춤형 치료제 시장까지 감안하면 부가가치는 훨씬 더 높아진다. 그러나 국내 DTC 업체들은 규제에 가로막혀 규모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녹십자지놈, 디엔에이링크, 마크로젠, 이원다이애그노믹스, 테라젠이텍스 등 국내 5대 DTC 업체 가운데 지난해 영업이익이 10억원을 넘은 곳은 마크로젠 한 곳에 불과하다. 이원다이애그노믹스는 52억원의 적자를 봤다.

거꾸로 가는 규제완화

이에 정부는 DTC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이다.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DTC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복지부는 협의체를 통해 마련한 개선방안에 대해 이달 말 공청회를 열 예정이다. 하지만 DTC업계는 회의적인 분위기다.

유전자검사 항목은 대폭 확대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의료계 의견을 받아들여 유전자검사업체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행 신고제인 유전자검사사업자 요건을 등록제로 바꿀 계획이다. 의료계는 DTC 허용을 확대하면 불필요한 의료 수요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업계 관계자는 “DTC 기업에 유전자검사 시장을 뺏길 것을 우려한 의료계 반대로 규제 개선이 지지부진했다”며 “등록제가 도입되면 규제 완화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전자가위 등 신기술도 발목

희귀난치병 치료, 종자 개량 등에 혁신을 몰고올 것으로 평가되는 유전자가위 기술도 국내에서는 막혀 있다. 한국은 희귀병 치료제 등 일부 분야 연구만 허용하고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종자 개량은 물론 유전자교정 치료제 등에도 허용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한 혈액암 치료제, 선천성 실명 치료제 등을 승인했다.

중국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한 70여 건의 치료제 임상시험의 90%가량이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유전자가위 기술 관련 규제가 거의 없는 덕분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줄기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의 분야는 아직 세계적 강자가 없는 초기 시장”이라며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등 정부 지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 DTC(유전자검사)

direct to consumer. 일반 소비자가 병원을 거치지 않고 민간 유전자 검사업체에 직접 검사를 의뢰해 유전적 질환 가능성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국내에서는 2016년 8월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탈모 등 12개 항목의 유전자검사가 허용됐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