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인터넷 회사 텐센트의 주식은 누가 가장 많이 갖고 있을까. 중국 정부라고 생각했다면 오답이다. 정답은 텐센트 지분 33.3%를 소유하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미디어 기업 ‘내스퍼스’다.
쿠스 베커 내스퍼스 의장 / 사진=Mail&Guardian
쿠스 베커 내스퍼스 의장 / 사진=Mail&Guardian
내스퍼스는 소프트뱅크와 함께 글로벌 투자의 양대산맥으로 꼽힌다. 그동안 이 회사가 정보기술(IT) 기업과 뉴미디어 분야에 투자한 금액만 96억달러(약 10조4000억원)에 이른다.

내스퍼스는 103년의 전통을 지닌 미디어 기업이다. 1915년 설립된 이래 남아공 언론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유지했다. 이 회사가 글로벌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00년대 들면서부터다.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현 쿠스 베커 내스퍼스 의장은 중국 인터넷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2001년 텐센트에 3200만달러(약 346억원)를 투자해 지분 46.5%를 획득했다.

당시 텐센트는 벼랑 끝에 몰린 상태였다. 텐센트는 창업 이듬해인 2000년 미국의 벤처캐피털 IDG와 홍콩의 통신사 PCCW로부터 110만달러(약 11억원)씩 투자받았지만 이렇다 할 수익 모델이 없어 회사 매각을 고려할 정도였다. 마화텅 텐센트 회장은 2008년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회사를 팔려고 돌아다녔지만 모두 실패해 계속 사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내스퍼스는 텐센트 지분의 절반 가까이를 획득하면서도 텐센트 경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기업이 성장하기를 기다렸다. 텐센트가 2004년 기업공개(IPO)를 한 이후에도 지분을 단 한 주도 매각하지 않았다. 이 회사가 텐센트에 투자한 3200만달러어치의 지분은 가치가 5400배 이상 뛰어 현재 1737억달러(약 188조원)로 늘어났다.

내스퍼스는 그동안 러시아, 인도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투자했다. 주요 투자 회사로는 △브라질 이커머스 기업 ‘모바일(Movile)’ △인도 온라인 여행사 ‘메이크마이트립’ △인도 전자상거래 회사 ‘플립카트’ △나이지리아 온라인 쇼핑 플랫폼 ‘콩가’ △독일 O2O(온·오프라인 연계) 음식 배달 업체 ‘딜리버리히어로’ 등이 있다.

투자한 IT 기업만 30여 곳이 넘는다. 상대적으로 실리콘밸리 투자 비중이 적은 탓에 서구 언론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미국 IT전문지 인포메이션은 내스퍼스를 “서구 언론이 무시한 IT 투자 거물”이라고 평가했다.
래리 일그 내스퍼스벤처스 CEO / 사진=내스퍼스벤처스
래리 일그 내스퍼스벤처스 CEO / 사진=내스퍼스벤처스
내스퍼스는 2015년 투자회사 내스퍼스벤처스를 설립한 뒤 세계 유망 스타트업을 찾아 나서고 있다. 내스퍼스 본사가 있는 남아공을 비롯해 미국 네덜란드 브라질 싱가포르 이스라엘 인도 홍콩 등지에 지점을 설립했다. 이미 수십여 개 기업에 21억달러(약 2조2700억원) 이상 투자했다. 지난해에는 인도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인 페이센스와 필리핀 가상화폐 기업 코인스(Coins.ph)에도 투자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래리 일그 내스퍼스벤처스 최고경영자(CEO)는 인포메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서구 회사들은 신흥시장 진출을 꺼리고 있다”며 “내스퍼스는 신흥시장 스타트업에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