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대박 비결 'AI·빅데이터'
2017년 미국 증시의 승자는 첨단 정보기술(IT) 기업이었다. 아마존과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주가가 30~50% 급등하며 증시를 주도했다. 올해 상장한 실리콘밸리 기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중에서도 ‘대박’ 사례가 속출했다. 사업모델의 특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고,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는 생활 밀착형 기업들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일상 번거로움 줄여주는 기업 높이 평가

올 4월28일 증시에 입성한 온라인 중고차 판매업체 카바나는 지난 28일까지 주가가 76.85% 상승했다. 연 환산 수익률을 따지면 100%가 넘는다. 이 회사엔 딜러도 중고차 전시장도 없다. 정보 검색에서 계약까지 전 과정이 온라인에서만 이뤄지며 주문한 차량은 집으로 가져다준다. 직접 차를 받아보려면 고층건물 형태의 중고차 자판기를 이용하면 된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동전을 자판기에 넣으면 건물에서 자동차가 튀어나온다. 오프라인 중고차 딜러들과의 실랑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들이 카바나로 몰렸다. 이 회사의 지난 3분기 매출은 2억254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8% 증가했다.

이 회사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은 데는 정보의 투명성이 큰 역할을 했다.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고화질 영상을 통해 차량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흠집이 있는 곳은 클로즈업한 화면을 별도로 제공한다. 4년이 넘은 중고차는 예상치 못한 결함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매입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지난 11월17일 상장한 온라인 의류업체 스티치픽스도 화려한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 상장 후 한 달여 만에 주가가 45.76% 올랐다. 회사일과 육아 등으로 제대로 옷을 고를 시간이 없는 소비자가 많다는 점에 착안, 취향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옷을 골라주는 서비스를 내놨다.

스티치픽스에 ‘의류 구독’을 신청하면 매번 다섯 벌의 옷이 집으로 배송된다. 마음에 드는 옷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반품하는 게 원칙이다. 구독과 반품 과정이 반복될수록 인공지능의 추천 품질이 높아진다. 소비자들의 콘텐츠 구매 목록을 기반으로 새로운 영화를 추천하는 넷플릭스의 인공지능과 작동 원리가 비슷하다.

이곳에서 꾸준히 옷을 주문하는 소비자들은 3분기 말 기준으로 240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고객 수는 29.7%, 매출은 25.2% 늘었다.

◆매출 둔화에 블루에이프런은 주가 폭락

빅데이터 분야에선 3월24일 증시에 이름을 올린 알테릭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28일까지 9개월여 동안 주가가 70.38% 뛰었다. 이 회사는 전문지식 없이도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이 가능한 상태로 바꿔주는 소프트웨어를 팔고 있다. 엑셀에 데이터를 옮겨 붙이는 지루한 작업을 자동으로 해준다고 이해하면 된다.

알테릭스는 최근 미국 대부분 가구인 1억2300만 가정의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종, 성별, 나이 등이 담긴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사고를 겪었다. 회사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신뢰가 굳건하다. 빅데이터 대중화의 첨단에 있는 기업이란 이미지가 주가를 지탱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직관적인 사업모델을 갖췄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용 요리 식자재를 정기적으로 배달하는 스타트업인 블루에이프런은 반년 사이 주가가 반 토막 났다. 1분기 42%에 달한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증가율이 2분기 18%, 3분기 3%로 급락하는 등 실적 우려가 커진 탓이다.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으로 유명한 스냅도 고전 중이다. 올해 미국 기업공개(IPO) 시장 최대어지만 시장 반응이 신통찮다. 3월 주당 24달러 내외이던 주가가 이달 14달러 선까지 떨어진 상태다.

실리콘밸리=송형석 특파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