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사고후 진정한 학자가 됐다"
2006년 7월 2일, 지질탐사의 마지막 코스인 데스밸리(Death Valley)를 향해 다섯 대의 차량이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앞 차가 일으킨 뿌연 모래먼지의 궤적을 따라 달리던 중 한남자가 운전하던 네번째 밴 한대가 갑자기 전복됐다.

사고 전날 사막에서 야영을 하며 잠을 청할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날이 등 밑의 작은 돌을 느끼고 몸을 뒤척일 수 있는 마지막 밤이 되리라는 사실을 몰랐다.

혼수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난건 그로부터 3일뒤.

MIT출신의 해양학자이자 서울대에서 연구를 하고있었던 이상묵 교수는 이 사고로 목뼈 신경에 손상을 입었고 목아래 감각과 운동신경을 모두 잃었다.

그러나 사고 6개월만인 2007년 1월 기적적으로 서울대학교에 복귀했으며 이듬해 3월 첫 강의를 하며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강단에 다시 서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서울대 기계항공과 이건우 교수의 뜻밖의 선행이었다.

경암학술상 공학 부분 수상으로 받게된 상금 1억원을 이상묵 교수에게 쾌척했다.

학교로 복귀한 이상묵 교수는 이건우 교수를 만나 물었다. "혹시 저 아세요?" 돌아온 대답은 "아니오."

한번도 본적도 없는 동료교수의 기부가 있은 뒤 이상묵 교수는 다시 강단에 서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사연을 들은 경암교육문화재단에서 또 1억을 쾌척했고 이것이 밑거름이 돼서 '보조재활공학센터'가 설립됐다.

손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이 교수는 입김으로 작용하는 마우스를 쓴다. 턱과 뺨으로 동작하는 전동 휠체어도 그의 다리역할을 해주고 있다. MS의 윈도우즈 비스타는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공짜로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 지원은 되지 않는다.

이 교수는 이 프로젝트로 장애인을 컴퓨터와 결합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세종대왕 프로젝트를 통해 한글로 음성인식되는 프로그램도 만들 생각이다.

이같은 일의 기획을 가능케 해준 것은 지식경제부의 후원이었다. 지경부는 장애인을 위한 기술개발 프로젝트에 연간 390억원을 지원키로 약속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사고후 진정한 학자가 됐다"
장애인에게는 희망을 일반인들에게는 자기반성과 과학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상묵 교수는 자신이 왜 성공적인 모델이 된것 같으냐는 질문에 "첫번째는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라며 장애인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부여해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을 시켜야한다고 강조했다.

지경부 후원 장애인을 위한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는 '휴먼웨어'다.

이교수가 만들어낸 신조어 '휴먼웨어'는 대학에서 장애인을 교육시켜 직업에 취업시키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말한다.

연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신형진군의 예를 들며 "근육병으로 말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지만 안구마우스로 컴퓨터공학을 공부할 수 있었던 데는 그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고 말한다.

이처럼 장애인을 교육시켜 고소득 IT에 취업시키면 장애인의 3고(苦)인 경제적 어려움, 사회활동 미참여, 가족간의 갈등이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 재기의 요인 두번째는 미국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라며 "한국에서 사고가 났으면 여러사람이 문병을 왔을테고 주위에 조언에 이런저런 희망의 고리를 잡고 민간요법등을 해봤을텐데 아무도 없는 미국에서 치료를 받느라 의사의 지시만을 믿고 따를수 있어 재활이 빨랐다"고 설명했다.

신경을 살리기 위해 침한번 한약한재 써본 적 없다는 이교수는 "내가 이토록 빨리 재활할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는 미국의 비싼 의료비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비해 15배나 높은 의료비 때문에 오래 입원해 있을수도 없었다고 말하며 웃음짓는 그는 특유의 활기와 재치로 시종일관 에너지를 발산했다.

남들 다하는 학문은 싫어 택한 해양학에서 손꼽히는 과학자가 된 그는 "나는 드디어 진정한 학자가 됐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어리둥절해 있는 기자에게 "연구비 많다고 비싼 술에 맛있는 저녁을 흥청망청 먹는것도 아니고 외유성 해외여행을 다닐수도 없으니 이거야 말로 진정한 학자가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 전신마비된 이상묵 교수가 '난 행운아'라고 말하는 이유는?


뉴스팀 이미나 기자 helper@hankyung.com/사진 양지웅 기자 yangd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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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묵 교수는

현재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미국 MIT-우즈홀 공동박사학위 과정을 마쳤으며 영국 더램대학교 연구원으로 세계적인 학자들과 연구 및 탐사활동을 펼쳤다.

1998년 한국해양연구원 선임 및 책임연구원을 지내며 한국 해양학의 지평을 넓혔으며 첨단 해양탐사선 온누리호의 수석과학자로 많은 연구 업적을 쌓았다.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 칼텍과 공동으로 진행한 야외지질조사 프로젝트 도중 불의의 사고로 목 아랫부분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가 된다. 사고후 6개월만에 기적적으로 강단에 복귀해 학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장애인의 재활과 독립을 돋는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