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이란의 오랜 숙원사업인 동결 자금 반환에 최종 성공할 경우 경색된 한·이란 관계가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 에너지 생산국인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할 수 있게 돼서다. 이란과의 경제·외교 관계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미국의 변화도 주목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금 용도 제한

이란은 1979년 이란혁명으로 신정체제를 수립한 이후 미국과 오랜 기간 반목해왔다. 한국도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로 이란과 직접적인 외화거래를 하지 못했다. 대신 미국의 승인 아래 국내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원화 계좌를 만들어 상계 방식으로 물품 거래를 해왔다.

예를 들어 한국 정유사가 이란산 원유 수입대금을 국내 이란 중앙은행 계좌에 원화로 입금하면 이란 중앙은행이 이를 확인한 뒤 자국 통화(리알화)로 대금을 결제했다. 거꾸로 국내 제조사가 제품을 이란에 수출하면 그 대금을 국내 이란 중앙은행 계좌에서 원화로 지급받았다.

2015년 이란이 핵 개발을 자제하는 대신 미국이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핵 합의(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로 양국 사이에 잠시 훈풍이 불기도 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 핵 합의를 탈퇴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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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다시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한국의 이란 중앙은행 계좌를 통한 거래는 중단됐다. 70억달러의 원유 결제대금이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잠긴 이유다.

그동안 다양한 방식의 자금 반환 방안이 제기됐지만 미국과 이란의 조건이 맞지 않아 번번이 좌절됐다. 이번에 극적으로 한국 내 이란 자금 동결을 풀게 된 것은 한국 정부가 낸 아이디어 덕이다. 이 돈을 인도주의 용도 등 공적으로만 쓴다는 조건으로 자금 반환의 명분을 쌓았다. 또 동결 자금을 중동 제3국 은행에 예치함으로써 감시 효과도 얻었다. 중동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란이 스파이 혐의로 억류한 미국인 인질을 풀어주고, 우라늄 농축도를 60% 이상 높이지 않는다는 조건도 붙었다.

韓, 이란과의 관계 회복 나서나

한국은 이번 동결 자금 해제로 이란과의 관계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란은 대표적인 중동 내 반미(反美) 국가로 이슬람 시아파의 종주국이다. 원유와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 생산국인 데다 군사력도 강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로선 외교적인 긴장 관계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이 미국의 제재 영향으로 2019년 5월 이후 원유 결제대금을 이란에 지급하지 않자 2020년 초 이란 정부는 “한국이 미국의 괴롭힘에 가담했다”며 “(한국 기업이) 이란 시장에 복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이란 내 선호도가 높은 삼성전자를 직접 겨냥해 불매운동을 부추기기도 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이란 내 반한 감정이 극에 달한 상태다. 성일광 고려대 교수는 “한국이 이란의 적대국이 돼 얻을 수 있는 아무런 실익이 없다”며 “한국은 거대한 이란 시장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란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중동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다시 확대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이란의 도발을 억제해 중동 평화를 유지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올 들어 잇따라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고, 사우디와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등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는 점도 미국에 큰 부담이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