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수첩, 건강보험 기록에서 수감시 소유물까지 '빼곡'
원본문서만 3천만건…지금도 가족 문의 등 기록 매년 수만건 추가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독일인에겐 소장 안맡겨

세계 최대 독일 나치정권의 강제징용 등 2차대전 전쟁범죄 관련 기록보관소인 아롤센 아카이브.
베를린에서 기차를 타고 네시간여 달리면 닿는 바트 아롤센 기록보관소의 중앙저장고는 알루미늄 공장 뒤편의 거대한 창고에 세 들어 있다.

약 1천700㎡의 저장고 전역에는 인류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범죄에 희생됐거나 피해를 본 1천750만명에 관한 기록들이 캐비닛과 진열장에 빼곡히 쌓여있다.

[르포] 전쟁범죄 피해자 1천750만명 기록 품은 독일 아롤센 아카이브
햇볕이 비치는 창가 앞, 전체의 3분의 1가량 되는 공간에는 어깨높이의 6단 캐비닛이 끝없이 줄지어 놓여있다.

가장 안쪽의 캐비닛에는 독일 나치정권의 부헨발트와 다하우, 플로센뷔르크의 강제·집단학살 수용소 수감자들의 인적 사항과 사진이 담긴 서류가 남녀별로 분류돼 성에 따라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돼 있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누런 서류봉투 안에는 수감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국적, 가족 상태, 수감 일자, 키, 몸매 등을 담은 수감자 카드와 수감 시 보유했던 개인 소유물, 다른 서류들이 담겨 있다.

기오라 츠빌링 아카이브 부문장은 "1946년 아카이브의 전신인 국제추적서비스(ITS)가 만들어질 당시 연합군이 강제·집단학살 수용소에서 가져온 기록들"이라며 "서류를 펼쳐볼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고 말했다.

[르포] 전쟁범죄 피해자 1천750만명 기록 품은 독일 아롤센 아카이브
다음 캐비닛들에는 공공기관과 보험사, 기업에서 확보한 2차 대전 당시 나치 정권 강제징용자들의 노동수첩과 건강보험 서류들이 성에 따라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돼 있다.

이들 기록은 2000년대까지 이뤄진 독일 정부의 강제징용자에 대한 배상 당시 활용된 바 있다.

저장고 관리를 담당하는 니콜 도미니쿠스씨는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을 위한 문의가 들어오는 경우 건강보험 카드를 찾는 게 최우선이었다"면서 "그 카드에는 연대별로 모든 정보가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등 동구권에서는 강제징용 관련 기록을 당사자들이 없앤 경우도 많았다"면서 "강제징용자는 나치정권 협조자라는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이 성에 따라 기록이 남아 있는 전쟁범죄 희생자 내지 피해생존자들은 1천750만명에 달한다.

독일에서도 벽지에 속해 직접 찾아오는 이는 많지 않지만, 인터넷에 대부분의 자료가 공개돼 있어 온라인 방문자는 연간 1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캐비닛을 둘러싼 사람 키를 훌쩍 넘어서는 거대한 진열장에는 지역별로 신고된 사망자, 실종자, 강제 집단학살수용소 수감자, 강제징용자 명단이 서류철에 보관돼 있다.

이어 2차 대전이 끝난 뒤 생존자들이 신고한 내용과 희망지로 이주한 기록이 담긴 상자가 보관돼 있다.

나치정권의 2차대전 당시 전쟁범죄에 대한 세계 최대 기록보관소인 아롤센 아카이브가 보유한 원본문서는 3천만건이지만, 그 외에 지역별로 확보된 명단이나, 지금까지 매년 2만건씩 들어오는 희생자나 피해생존자 가족이나 친지들의 문의 기록 등을 포함하면 규모는 훨씬 늘어나게 된다.

[르포] 전쟁범죄 피해자 1천750만명 기록 품은 독일 아롤센 아카이브
유네스코에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롤센 아카이브는 독일과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달란드, 폴란드, 영국, 미국 등 11개국 대표들이 구성한 국제위원회의 감시를 받는다.

위원회는 임기 10년의 기록보관소장을 선출한다.

다만, 독일 국적자는 소장을 맡지 않는 게 관례다.

앙케 뮌스터 홍보부문장은 "바트 아롤센 아카이브는 독일 연방정부가 재정지원을 하는 국제적 독립 조직"이라며 "독일이 혹시라도 아카이브를 폐쇄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없도록 독일인은 조직의 장을 맡지 못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르포] 전쟁범죄 피해자 1천750만명 기록 품은 독일 아롤센 아카이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