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보다 젊은세대에 인기"…이주민 몰린 日마을의 사연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일본에서 사진이 가장 예쁘게 나오는 마을'의 인구대책
유명 관광지 후라노·비에이 옆의 무명마을
1985년 '사진마을' 선언…문화를 부흥 콘셉트로
사진고시엔 개최 등 '日 사진 수도'로 각광
이주지원금 '0'지만 25년 연속 인구 늘어
히가시카와 조례는 꽤 까다롭다. 히가시카와에서 집을 지으려면 자재는 가능한 한 목재를 사용하고, 지붕은 삼각형이어야 한다. 외벽의 색깔도 정해져 있고, 미관을 해치는 오일 탱크(홋카이도의 집들은 혹독한 겨울철 난방을 위해 별도의 등유탱크를 설치한 곳이 많다.)는 숨겨야 한다.
도로에서 최소 30㎝ 안쪽까지 잔디밭을 깔고, 정원에는 적어도 두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덕분에 히가시카와 고유의 스타일을 갖춘 전원주택촌이 생겨났다.
히가시카와는 1994년부터 매년 사진 고시엔 대회를 개최한다. 사진 고시엔 출전 학교를 선발하는 방식은 야구 고시엔과 같다. 일본 각 지구에서 우승을 차지한 고교 18곳이 일주일 동안 히가시카와에서 머물면서 찍은 사진으로 우승을 가린다. 사진 고시엔 결승전이 끝나면 곧바로 국제사진페스티벌을 열어 분위기를 띄운다. 사진 고시엔이라는 이색적인 대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만화도 제작됐다.
'일본에서 가장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마을', '일본의 사진 수도' 선언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구 대책이다. 히가시카와는 비에이와 후라노 같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관광지가 아니라 쭉 살아보고 싶은 거주지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히가시카와도 일본의 다른 시골 마을처럼 인구 감소의 길을 걸었다. 1만2000명이었던 인구가 1994년에 7000명 밑으로 줄었다. 2022년 4월30일 현재 인구는 8480명으로 25년새 20% 늘었다. 시골 마을이지만 외국인 주민도 5%(398명)나 된다. 다른 지자체처럼 이주자들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뿌려서가 아니다. 미야모토 이부키 히가시카와군청 지역이주협력대 담당자는 "히가시카와는 이주자에게 지원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는다"며 "히가시카와를 좋아하고 이해해 주시는 분들의 이주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금을 주기는 커녕 '아름다운 히가시카와 풍경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조례'에서 보듯 집 한 채 짓는데도 까다로운 조건이 따라 붙는다. 조례를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소득 수준을 갖춰야 히가시카와에 이주가 가능하다. 이주자를 사실상 선발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런데도 전체 인구의 54%가 이주자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마을도 젊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고령화율)이 32%에 불과하다. 일본 시골 마을은 대부분 고령화율이 50% 안팎이다. 은퇴자는 20%에 불과하고 육아 세대가 많이 이주해오는 덕분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당연히 고령자보다 젊은 이주자가 늘어나는 것을 반길 수 밖에 없다. 고령자 비율이 늘면 사회보장비 등으로 나가는 돈이 많지만 젊은 세대나 고소득 은퇴자가 이주해 오면 세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홋카이도 히가시카와=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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