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대만 협력업체들의 공급 물품에 ‘대만산’ 대신 ‘중국산’을 표기할 것을 요청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미·중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중국의 통관·운송 보복을 우려한 조치란 분석이다.

8일 일본 닛케이아시아와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애플은 대만에 본사를 둔 협력사에 부품 원산지 표기에 ‘중국 타이베이(Chinese Taipei)’ 또는 ‘대만, 중국(Taiwan, China)’으로 표시했는지 신속히 검토하고, 그렇지 않으면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중국 세관당국은 제품 상자, 수입 신고서 등에 대만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표기를 금지한다. 이에 따라 ‘대만산(Made in Taiwan)’ 또는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 들어가면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중국 세관에서 선적을 보류 또는 검사해 벌금을 부과하거나 최악의 경우 선적을 거부할 수도 있다.

애플은 대만산 부품을 받아 중국에서 조립한다. 오는 9월 아이폰14 출시를 앞두고 부품 수입과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대만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국 내 인터넷 검열을 감시하는 국제민간기구인 그레이트파이어는 “중국과 홍콩 이용자의 이모티콘 키보드에서 대만 국기를 삭제한 것보다 더 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매출 비중이 높은 애플은 과거에도 중국 당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저자세를 취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정부 요청에 따라 ‘쿠란 마지드’ 앱 등 무슬림 관련 앱을 애플 앱스토어에서 삭제했다. 이는 신장 지역의 무슬림 소수민족 위구르를 겨냥한 중국의 탄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돼 논란이 됐다.

2017년엔 중국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해외 인터넷 우회접속 프로그램인 가상사설망(VPN) 앱을 앱스토어에서 지웠다. 이는 중국의 정보통제와 검열에 힘을 보탠 것으로 해석돼 서방 언론과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