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을 넣고 100달러짜리 영수증을 보게 되는 게 너무 공포스럽습니다.”

톰 클로자 오피스넷 글로벌 에너지 총괄은 3일(현지시간) CNN비즈니스에 국제 유가 하락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그는 “미국 휘발유 가격이 갤런(약 3.8L)당 5달러를 넘어서자 대부분 사람들이 기름값을 견디지 못하고 자동차 운전을 줄이고 있다”고 전했다.

美 원유 재고 쌓인다

휴가철에도 줄어든 美 기름 수요…국제유가 5개월새 27% '뚝'
클로자 총괄의 분석대로 미국 내 원유 수요는 줄고 있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지난 6월 9일 미국 내 원유 수요량은 하루평균 9000만 배럴이 넘었지만 6월 23일 8940만 배럴로 감소했다. 7월엔 하루 수요량이 8700만 배럴로 준 데 이어 휴가철이 몰려 있는 이달 초엔 8590만 배럴까지 떨어졌다.

원유 재고도 3주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EIA가 집계한 7월 마지막주 원유 재고량은 4억2655만 배럴로 전주 대비 446만 배럴 증가했다.

수요 감소와 재고 증가로 국제 유가도 하락하고 있다. 9월물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은 이날 배럴당 90.66달러로 장을 마쳤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5일 종가(91.59달러)보다 낮은 가격이다. 사상 최고치를 찍은 3월 8일(123.70달러)에 비해선 27% 하락했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미국 내 휘발유 가격도 안정세다. 6월 14일 5.02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갤런당 휘발유값은 4.16달러를 기록한 이날까지 50일 연속 떨어졌다. 오하이오와 아이오와 등 19개 주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달러 아래다.

향후 전망은 엇갈려

단기적으로 미국 내 기름값은 휴가철이 끝나면 추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컨설팅업체 리포오일어소시에이츠의 앤드루 리포 대표는 “여름 휴가철이 지나면 휘발유 수요가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 노동절이 있는 9월 초엔 미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달러 안팎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면 인플레이션 압박이 낮아진다. 오는 10일 발표되는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9.1%였던 6월에 비해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시장 전망치는 8.8~8.9%다.

하지만 원유 수급이 빡빡한 유럽을 중심으로 유가가 다시 오를 것이란 예상도 적지 않다. UBS는 “글로벌 원유 수요는 견고하고 중국 경제가 2분기를 저점으로 해서 회복될 것”이라며 “그에 반해 OPEC+의 생산 가능 능력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말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3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란산 원유 거래 변수

서방국가들이 이란과의 핵협상을 재개하는 것도 관심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대표단은 이란과 핵합의를 복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5개월 만에 이란 대표단을 만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산유국들이 이날 OPEC+ 정례회의에서 기대 이하의 소폭 증산에 합의하자 원유 공급을 늘릴 산유국으로 이란을 찾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은 세계 4위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미 국무부 협상대표인 롭 말리 이란 특사는 이날 트위터로 오스트리아 방문 계획을 알리면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EU 대표단은 지난해 4월부터 빈에서 이란과 핵합의 복원 협상을 해왔다. 지난 3월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에서 해제하는 것을 두고 이견을 보여 합의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EU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이란 핵합의 복원을 위한 타협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핵협상이 타결돼 이란이 국제 제재에서 풀려나면 이란산 원유가 국제 원유시장에 풀리게 된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