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만을 전격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3일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류더인 회장과 미국 투자 확대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로 대표되는 경제·산업 문제가 미국의 최대 현안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만 자유시보 등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이날 대만에서 미국대사관 역할을 하는 주대만미국협회(AIT)에서 화상으로 류 회장과 회의했다. 양측은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회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차이잉원 총통이 주최한 오찬에는 장중머우 TSMC 창업자를 비롯한 산업계 대표들이 초대됐다.

대만 집권당인 민진당의 커젠밍 의원은 “펠로시 의장은 TSMC의 미국 투자에 감사의 뜻을 밝혔고 류 회장은 투자를 더 늘리기 위해 바라는 사항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커 의원은 펠로시 의장이 반도체산업 육성 법안을 업계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 법은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했다.

TSMC는 미국과 서방에 반도체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핵심 기업으로 꼽힌다.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 등 유사시에 대비해 TSMC에 미국 공장 건설을 요청해 왔다. TSMC는 2020년 5월 120억달러(약 15조7000억원)를 투자해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최첨단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 공장은 내년 말 준공할 예정이다. TSMC 애리조나 공장의 설비 확대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배터리 제조업체인 중국 CATL은 북미 투자 계획을 보류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CATL은 미국 테슬라, 포드 등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공장 설립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하자 이를 9월 이후로 연기했다.

중국이 대만을 사방에서 포위하는 전방위적 ‘무력 시위’에 나서면서 세계 물류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동북아시아로 향하는 일부 천연가스 운반선이 항로를 변경하거나 운항 속도를 줄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주말 대만과 일본으로 가는 화물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中, 4일부터 6개 해역서 '대만포위' 군사훈련
대만기업과 교역·협력 금지…수출·수입 제한조치도 단행

낸시 펠로시 의장은 3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회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존중한다면서도 “대만과의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대만이 영원히 안전하고 자유롭기를 바란다”며 “미국은 대만과의 경제 관계를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은 “대만은 군사적 위협에 맞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국가 주권을 확고히 하고 민주적 방어선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경제·군사적 반격을 대만에 집중시키고 있다. 중국 정부의 대만 담당 기관인 국무원 대만판공실은 이날 대만의 ‘대만민주기금회’와 ‘국제협력발전기금회’를 ‘대만 독립 분자 관련 기구’로 규정하고 이들 기금회와 중국의 조직·기업·개인 간 협력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대만판공실은 또 산더에너지, 링왕테크놀로지, 톈량의료, 톈옌위성테크놀로지 등 두 기금에 기부한 대만 기업들과의 교역·협력을 금지시켰다. 아울러 해당 대만 기업 책임자는 중국에 들어올 수 없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부터 대만에 대한 천연 모래 수출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관세청은 대만산 감귤류 과일, 냉장 갈치, 냉동 전갱이의 수입을 이날부터 잠정 중단시켰다. 관세청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 전날인 1일에도 100여 개 대만 기업 식품의 수입을 금지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는 2일 밤부터 대만 북부·서남부·동남부 해역과 공중에서 공·해군 합동훈련, 대만 해협에서 장거리 화력 실탄 사격, 대만 동부 해역에서 일반 화력 시범 등에 들어갔다. 인민해방군은 4~7일 대만을 둘러싼 6개 해역과 공중에서 군사훈련을 할 계획이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