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해 라틴아메리카의 스위스가 되겠다.”

라틴아메리카 최빈국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이 같은 야심찬 계획을 공개했다. 그해 9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지정하는 통화 실험에 나섰다. 그러나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엘살바도르가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트코인 가격 폭락 등으로 외채 상환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다.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실험'에 디폴트 경고등
뉴욕타임스(NYT)는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 가격 급락 여파 등으로 디폴트 위기에 내몰렸다고 지난 5일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엘살바도르는 내년 1월 8억달러(약 1조400억원) 규모의 외채를 상환해야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 투자 손실과 인플레이션에 따른 보조금 지급 등으로 재정위기가 불거진 상태다. 엘살바도르는 지난해 전체 투자 예산의 15%를 비트코인 부문에 투자했다. 미국 경제매체 포천에 따르면 엘살바도르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규모는 90%에 달한다.

지난달 말 기준 엘살바도르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2381개다.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1억542만달러(약 1370억원)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비트코인 가격이 최근 급락하면서 평가가치는 54%가량 감소했다. 7일 시세 기준으로 엘살바도르 정부가 보유한 비트코인의 가치는 4862만달러(약 63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비트코인을 공식 통화로 채택하면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받은 관광업이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기대했다. 호기심으로 엘살바도르를 찾는 관광객뿐 아니라 비트코인 투자자가 몰려들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경상북도 면적에 불과한 엘살바도르는 관광업이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주력 산업이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비트코인 전자지갑 도입을 통해 자국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송금하는 돈에 대한 수수료도 절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최고 수준에 달하는 빈곤율(2020년 기준 36.4%)을 낮추겠다는 포석이었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 도입에 앞장설 수 있었던 배경엔 기업인 출신의 부켈레 대통령이 있다. 그는 대표적인 ‘비트코인 옹호론자’다. 최근 비트코인 하락장 속에서도 “차트를 보지 말고 인생을 즐겨라” “비트코인이 미래다” 등 비트코인에 대해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다. 지난달 30일엔 트위터를 통해 엘살바도르 정부가 비트코인 80개를 추가 매입한 사실도 공개했다. 엘살바도르에 주거지, 채굴장 등을 갖춘 자족도시인 ‘비트코인 시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지난 5월 발표했다.

하지만 ‘비트코인 천국’을 만들겠다는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국민들마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을 송금하고 결제할 수 있는 전자지갑 ‘치보(chivo)’를 개발했지만 현재 이용률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미국경제조사국 조사에 따르면 치보 앱을 실제 사용한 엘살바도르 국민은 10%에 불과했다.

엘살바도르의 디폴트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절반 정도로 점쳐진다. 포천은 엘살바도르가 디폴트를 선언할 확률이 48%에 달한다고 지난달 초 보도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