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 통화가치가 급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 움직임에 중국 성장세 둔화 전망까지 더해진 결과다.

신흥국 통화 25개로 구성된 MSCI 신흥국 통화지수는 9일(현지시간) 전 거래일 대비 0.04% 오른 1691를 기록했다. 그러나 "1740을 웃돌았던 4월초 기록에 비하면 한달 새 4% 이상 폭락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이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 여파 직후 보인 낙폭과 비슷한 수준이다.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 이후 시중에 대거 풀린 유동성을 거둬들이겠다"는 Fed발 긴축 드라이브다. 지난 4일 Fed는 22년만에 기준금리를 한번에 50bp(1bp=0.01%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밟았다. 이로 인해 미국 주식과 채권 가격은 동반 하락했다. 반면 달러화 가치는 20년만에 최고치로 뛰어올랐다.

중국에서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조짐도 신흥시장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4월 수출 증가율은 전월 대비 3.9%로, 2년여만에 가장 저조한 성장세를 보였다. 상하이 봉쇄조치 여파 때문이다. FT는 "이 같은 소식에 위안화 환율은 18개월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신흥국 통화 전반에 걸친 추가 매도세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각종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브라질, 남아공 등 주요 원자재 수출국들의 통화가치를 끌어올렸지만, 일시적 상승세에 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Fed의 긴축 스텝이 원자재 수출국들이 누릴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의 수혜를 상쇄시킬 만큼 공격적이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신흥시장 인도가 주요 원자재 수입국으로서 원자재값 폭등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도 MSCI 신흥국 통화지수가 급락한 원인으로 꼽혔다. TD증권의 신흥시장 포트폴리오 전략책임자 크리스티안 마지오는 "Fed 빅스텝과 중국 경기침체 우려, 여기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불확실성까지 계속된다면 신흥국 통화가치에는 '독약 수준의 삼중고'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