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농가에서 곡물 재배량을 늘리고 작물 다양성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전쟁 이후 전 세계 곡물 가격이 치솟음에 따라 이를 투자 기회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두, 옥수수, 사탕수수 등 외에 밀을 재배하려는 중남미 농가가 늘고 있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밀 시장의 경우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체 수출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밀 수확과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올해 초만 해도 t당 279달러였던 밀 가격은 최근 400달러를 돌파했다.

밀 뿐만이 아니다. 전쟁으로 인플레이션이 악화하고 공급망이 더욱 차질을 빚게 되자 모든 곡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유엔은 "전 세계 식량 비용이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면서 "파괴적인 기근(Destructive hunger)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중남미 농가가 곡물 재배 확대를 통해 투자 기회를 엿보는 동시에 글로벌 식량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동참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컨설팅 기업 스톤엑스의 한 전문가는 "러시아 침공은 중남미의 여름 재배철과 브라질의 옥수수 이모작 시즌 등을 앞두고 이뤄졌다"면서 "전쟁 국면이 계속돼 높은 곡물가격이 유지되면, 중남미 대륙에서 각종 곡물뿐만 아니라 들깨, 참깨 등 기름종자의 재배 확대를 자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례로 최근 아르헨티나 농가에서는 해바라기씨 재배를 대폭 늘리고 있다. 해바라기씨는 비료가 덜 들어가고 메마른 토양에서도 잘 적응하는 작물이다. 비료 가격 상승세와 건조한 날씨가 올해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감안할 때 해바라기씨 재배 확대가 아르헨티나 농가에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연료, 비료, 살충제 등 주요 농업 투입물의 비용 상승과 공급 부족이 장애가 될 것이란 우려도 만만찮다. 브라질 농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전쟁 기간에 대한 불확실성과 선적 물량의 한계 등으로 인해 전체 농업 생산량이 크게 증가할 것 같지는 않다는 반론도 있다"고 말했다. 중남미 농가로서는 판매 시장에 대한 보장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공급을 늘리는 모험을 강행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