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30년간 이어진 세계화에 마침표가 찍혔다.”

연간 10조달러를 굴리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사진)는 24일(현지시간) 이렇게 진단했다. 코로나19 유행 후 연이어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경제를 재편할 것이란 의미다. 같은 날 ‘가치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전쟁 이후 경제 중심축이 ‘세계화’에서 ‘온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자국 복귀)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핑크 CEO는 이날 주주서한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이후 유지되던 세계 질서를 뒤엎었다”며 “팬데믹 위에 겹겹이 쌓인 전쟁의 정치·경제·사회적 영향이 수십 년간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된 뒤 러시아는 세계 금융 시스템에 화려하게 편입됐다. 2001년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세계화 속도가 빨라지자 국가 간 무역이 늘고 글로벌 자본시장도 성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완전히 바꿀 것이란 게 핑크의 평가다. 정부와 기업이 다른 나라 경제 의존도를 재고하기 시작하면 기업들은 더 많은 공장 등을 자국이나 인근 국가로 옮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글로벌 기업이 세계 각국에서 사업을 철수하는 속도가 그만큼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핑크는 ‘제조 허브’로 부상해 새롭게 수혜를 볼 국가로 미국 멕시코 브라질 동남아시아 등을 꼽았다. 전쟁 이후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제로) 속도는 늦춰지겠지만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움직임은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대안을 찾는 국가가 늘면서다. 디지털 화폐 도입 움직임은 더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막스 회장도 지정학적 긴장이 번져 기업과 정부가 공급 안보에 집중하면 온쇼어링이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글을 통해 “기업들은 수십 년간 생산 부문을 해외로 옮겨 노동비를 아꼈고 이는 신흥국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며 “하지만 이로 인해 미국에선 수백만 개 일자리가 사라졌고 중산층이 무너졌다”고 했다. 기업의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오프쇼어링이 미국 경제를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세계화를 통해 기업은 인건비 지출을 줄였고 소비자들은 저렴한 상품을 구매하면서 지출 여력을 키웠다. 막스는 세계화 중심축이 이전과 반대로 움직이면 투자시장엔 한동안 후유증이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온쇼어링이 늘어 내수 경제가 살아나면 제조업 일자리가 늘고 자국 기업 경쟁력은 높아진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