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5% 이상 급등하며 배럴당 120달러 선을 넘어섰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 원유 수출국인 러시아의 원유 공급이 급감하면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5월물은 전날보다 5.3% 오른 배럴당 121.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 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물은 5.2% 상승한 114.93달러에 마감했다. 브렌트유와 WTI 모두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발표한 지난 8일 이후 최고가다.

러시아가 카자흐스탄의 원유 공급망을 흔들면서 유가가 치솟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국영기업 카스피해송유관컨소시엄(CPC)은 이날 카자흐스탄에서 흑해로 연결되는 송유관의 가동을 최소 두 달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 송유관을 통해 흑해에서 선박에 실려 미국, 유럽 등으로 수출되는 원유는 하루 평균 120만배럴이다. 세계 원유 수요의 1.2%에 해당하는 규모다.

러시아는 흑해 폭풍우 피해로 인해 송유관 가동을 멈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검토 중인 유럽연합(EU)에 러시아가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한 가운데 EU까지 제재에 동참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원유 공급 부족 우려는 커지고 있다. 컨설팅업체 리포우 오일 어소시에이츠의 앤드루 리포우 회장은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로 하루 200만~300만배럴의 공급이 중단됐다"며 "대체 공급처를 찾거나 수요가 급감하지 않는 이상 유가는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러시아는 매일 400만~5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다.

미국의 원유 재고가 감소했다는 점도 유가 급등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주에 미국 석유 재고가 250만 배럴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에너지 선물 트레이더인 레베카 바빈은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망을 활용해 서방 국가에 보복하기 시작했다"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