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앤아웃버거
사진=인앤아웃버거
인앤아웃버거는 ‘시대착오적인 햄버거 가게’로 불린다. 남들이 신메뉴를 쏟아내는 동안 세 가지 햄버거 메뉴로 74년째 장사를 하고 있어서다. 디지털 시대에 그 흔한 자체 주문 앱도 없다. 공격적인 마케팅과 광고 역시 하지 않는다. 패스트푸드는 빠르기가 생명인데 조리 시간도 10분가량 걸린다. 매장 수가 곧 경쟁력인 체인사업이지만 해외 진출은커녕 미국 중서부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신선한 재료, 메뉴는 딱 3개…햄버거 연매출 1조 찍다
하지만 비난하기에는 이르다. 2020년 첫 콜로라도주 매장을 오픈하자 고객들이 14시간을 기다릴 만큼 영업이 잘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마켓포스에 따르면 인앤아웃은 지난해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버거 체인점으로 꼽혔다. 할리우드 스타 패리스 힐튼이 인앤아웃 버거를 사러 가기 위해 음주운전을 감행하다 단속에 걸린 유명한 일화도 있다. 이 같은 성공의 배경에는 린지 스나이더 인앤아웃 최고경영자(CEO)의 ‘화려한 비즈니스 전략보다 기본에 충실하는 게 곧 혁신’이란 경영철학이 있었다.

기본에 충실하는 게 최고의 혁신

신선한 재료, 메뉴는 딱 3개…햄버거 연매출 1조 찍다
인앤아웃은 1948년 스나이더 CEO의 조부모인 해리 스나이더·에스더 스나이더 부부의 손에서 탄생했다.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매장으로 시작했지만 스나이더 부부의 ‘맛과 품질이라는 기본에 충실하자’는 경영철학 덕분에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매장은 신선한 식자재를 배송할 수 있는 곳에만 개설했다. 냉동육과 전자레인지, 적외선 램프는 쓰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햄버거 메뉴는 세 가지지만 고객의 빵 굽기나 소스 취향을 반영한 ‘나만의 햄버거’ 서비스를 제공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 결과 인앤아웃은 미국 서부 지역을 대표하는 햄버거 체인점으로 자리잡았다.

린지 스나이더는 2010년 스물네 살의 나이로 인앤아웃 CEO에 취임한 뒤 이런 경영철학을 그대로 이어갔다. 쉽지만은 않았다. 당시 경영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경쟁업체들은 급변하는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신메뉴를 내놓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갔다. 미국 동부 지역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쉐이크쉑은 인앤아웃의 텃밭인 서부에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스나이더 CEO는 맛과 품질이라는 기본 원칙으로 대응했다. 무리하게 매장을 늘리지 않고 신선한 재료를 조달할 수 있는 곳에만 직영점을 열었다. 메뉴도 크게 바꾸지 않았다. 15년 만에 추가한 메뉴는 코코아로, 여전히 버거 메뉴는 세 개다. 그 결과 성장 속도는 더디지만 텍사스, 오리건, 콜로라도에 오픈한 매장들이 연이어 매출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인앤아웃의 매장당 평균 매출은 맥도날드의 두 배에 달한다. 마진율도 20%로 경쟁업체인 쉐이크쉑(16%)과 치폴레(10.5%)보다 높다.

기본 중에 기본은 ‘사람’

스나이더 CEO가 조부모부터 내려온 경영철학에 한 가지 더한 게 있다. 바로 ‘사람’이다. 최고의 직원에게서 최고의 햄버거와 서비스가 나온다는 신념으로 그는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 수준의 급여를 준다. 맥도날드와 버거킹 저연차 직원은 일반적으로 시간당 10~12달러 정도를 받지만 인앤아웃의 시급은 15달러 이상이다. 유급휴가와 의료보험 혜택도 제공한다.

그는 패스트푸드점이 파트타임으로 잠깐 일하는 곳이라는 통념을 깨고 인앤아웃을 직원들이 미래를 거는 일터로 만들었다. 직원 관리 및 서비스에 대한 수업을 제공하는 인앤아웃 대학을 통해 일터에서 성장할 수 있게끔 돕는다. 이렇게 성장한 인앤아웃의 직원은 매니저 직급을 달면 평균 연 16만3000달러(약 2억원)를 받는다. 캘리포니아의 치과의사, 회계사 평균 수입보다 많은 수준이다.

스나이더 CEO의 신념은 적중했다. 세계 최대 직장 평가 사이트 글래스도어에 따르면 인앤아웃은 2018년 일하기 좋은 직장 4위에 뽑혔다.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구글보다 한 단계 높은 순위였다. 직원들의 만족도가 올라가자 인앤아웃의 매출은 스나이더 CEO가 취임한 이후 8년 만에 약 두 배 증가한 10억달러를 기록했다. 모건스탠리는 “인앤아웃 직원들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돈보다 공동체와 경영원칙 지켜

스나이더 CEO가 걸어온 길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회사를 경영하던 아버지 가이 스나이더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졌다. 스나이더 CEO가 열일곱 살 때였다. 창업자인 할머니 에스더가 다시 경영에 나섰지만 7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스나이더 가문의 유일한 자손인 린지 스나이더는 스물네 살의 나이에 회사를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 억만장자가 된 그는 자신이 겪은 시련을 잊지 않고 지역 공동체를 위한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약물 남용으로 아버지를 잃은 스나이더 CEO는 2016년 약물 남용 및 인신매매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슬레이브2낫싱재단을 설립했다. 인앤아웃재단을 통해 아동학대 방지 사업도 벌이고 있다.

스나이더 CEO의 다음 목표는 기업공개(IPO)도 해외 진출도 아니다. 경쟁업체 쉐이크쉑의 시가총액이 31억달러라는 것을 고려하면 인앤아웃이 상장한다면 시가총액이 수십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인앤아웃의 전체 지분을 갖고 있는 그는 IPO를 하면 엄청난 현금을 거머쥘 수 있다. 하지만 스나이더 CEO는 “앞으로도 회사를 매각하거나 IPO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돈이 아니라 회사의 경영원칙과 문화를 지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