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 연구기관이란 입지 흔들려…기업처럼 체질 확 바꿔야"
‘유럽을 대표하는 석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 아탈리아소시에 대표(78·사진). 그는 1999년 발간한 《21세기 사전》에서 “21세기엔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이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2018년에 펴낸 저서 《미래대예측》에서도 “사람들의 이기주의가 전염병을 더욱 빠르게 확산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멀게는 20년도 전에 나온 그의 예언들은 코로나19로 현실화됐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이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에 들어섰지만 세계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있다. 원자재 공급망은 꽉 막혔고 물가는 빠르게 치솟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이가 ‘델타’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여전하다. 이런 불확실성의 시기에 아탈리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세계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그는 오는 10일 개막하는 ‘글로벌인재포럼 2021’에서 ‘생명 경제로의 전환’을 주제로 강연한다. 이메일을 통해 그의 견해를 들어봤다.

“이기적 이타주의가 필요”

아탈리 대표는 “세계가 백신을 충분히 접종할 때까지 코로나19 사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기적 이타주의(selfish altruism)를 회복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기적 이타주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게 자신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개념이다. 마스크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스크를 쓰면 답답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착용하면 코로나19 확산이 잦아들고 경제 회복이 빨라져 결국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아탈리 대표는 “누구나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자연스럽게 이기적인 마음을 품게 된다”며 “그러나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게 곧 이기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2의 코로나19, 지구 온난화 같은 세계적 위험에 대비하려면 하루빨리 ‘생명경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과 연관된 분야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보건 위생 식량 농업 교육 물 친환경에너지 등이 대표적이다.

아탈리 대표는 “국내총생산(GDP)의 40%가 생명경제 범주에 해당한다”며 “이를 7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각국 정부가 생명경제 관련 분야를 정책의 우선순위로 세우고 인센티브를 걸어야 한다”며 “시장 주체들도 생명경제를 투자의 기준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세계 각국 정부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도 이와 연관돼 있다. 아탈리 대표는 프랑스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도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을 활용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질 것들

아탈리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기업과 대학에 작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들 사이에선 메타버스(가상세계)를 활용한 원격근무가 확산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원격근무가 일상화되면 직원들의 충성심과 소속감을 유지하는 게 기업들의 과제로 떠오를 것”이라며 “두둑한 급여를 주는 것은 물론 사무실을 5성급 호텔 수준으로 좋게 꾸며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학에 대해서는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이 흔들리고 있다”고 봤다. 미국 명문대학의 인공지능(AI) 및 머신러닝(기계학습) 관련 학과에서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로 자리를 옮기는 교수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게 이를 입증한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대학보다 훨씬 뛰어난 연구환경을 갖추고 있는 게 명문대 교수들의 이직 배경이다. 카네기멜론대, 스탠퍼드대, 하버드대 등 북미지역 명문대에서 빅테크로 이동한 AI 관련 학과 교수는 2010년 10명 미만에서 2018년 42명으로 증가했다.

아탈리 대표는 “대학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기업들처럼 체질을 바꿔야 할 것”이라며 “질 좋은 지식 서비스를 기업에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기초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자조적 표현이 있을 정도로 인문학 전공자들의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소개하자 그는 “더 많은 엔지니어와 의사, 과학 전문가가 필요한 게 현실”이라고 했다. 아탈리 대표는 “물론 기술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은 필수적인 학문”이라며 “중요한 것은 양쪽의 균형”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아탈리는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취임 후 10년간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2007년 집권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체제에서는 성장촉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설립을 주도하며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초대 총재를 지내기도 했다. 지금은 1994년 설립한 컨설팅 회사 아탈리아소시에 대표를 맡고 있다.

■ 자크 아탈리 약력

△1943년 알제리의 유대계 가정에서 출생
△1956년 프랑스 이주
△1966∼1970년 파리공대, 파리정치대, 국립행정학교(ENA) 졸업
△1972년 소르본대 경제학 박사
△ 1968∼1985년 소르본대 파리공대 등에서 경제학 강의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고문
△1991∼1993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초대 총재
△2008∼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산하 성장촉진위원회 위원장
△현 아탈리아소시에 대표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