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월 국제 유가는 배럴당 11.65달러로 4개월 만에 네 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던 아랍 국가들이 석유 자원을 무기 삼아 생산을 줄이고 가격을 올리면서다. 1차 오일쇼크다. 그해 미국 경제성장률은 0.5% 떨어져 역성장했다. 물가는 11.05% 급등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상품 가격이 올라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지만 생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제가 급속도로 위축됐다. 오일쇼크발(發)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은 유럽 일본 등 세계를 강타했다.

오일쇼크 악몽이 50년 만에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공급망 곳곳이 무너졌지만 소비 수요가 늘면서 물가가 빠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을 비롯해 가구 의류 등 사실상 모든 소비재 기업이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물가 뛰는데 공장은 멈췄다"…세계경제 '공급 쇼크發 침체' 덮치나

인플레로 시름하는 미국·유럽

독일 연방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1% 올랐다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독일 물가상승률이 4%를 넘어선 것은 1993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독일은 통일 이후 동독 지역 상품 가치가 오르면서 물가가 급격히 상승했다.

스페인은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4%(전년 동기 대비)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도 지난달 물가가 3.2% 올랐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의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3.4%로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물가 상승세는 더욱 가파르다. 1일 미 상무부는 지난 8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작년 동기보다 3.6%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3.5%)보다 높았다. 두 달 연속 3.6%를 기록해 1991년 5월 이후 3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근원 PCE 가격지수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인플레이션 추이를 관찰할 때 가장 주목하는 물가 관련 통계지표로 알려져 있다. Fed의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평균 2%다.

세계 식료품 가격은 지난해 3월 이후 40% 급등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생산이 급격히 줄었지만 소비 수요가 살아나자 가격이 급등했다. 고기, 유제품 등 모든 식품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에너지난까지 더해져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세계 각국은 생산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너지 부족에 유가도 치솟고 있다. 유가가 급등하면 비용이 높아져 생산을 늘리는 게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달 28일 심리적 마지노선인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다. 3년 만의 최고치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은 석탄 부족에 시름하고 있다.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면서다. 일부 지역에선 공장까지 가동을 멈췄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는 국영 에너지기업들에 석탄과 석유 확보를 지시했다. 중국이 ‘에너지 사재기’에 나서면 가격은 더욱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가 살아난 미국과 유럽에서 극심한 인력난을 겪는 것도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높이는 원인이다.

전문가들 “1970년대와는 다를 것”

경기 둔화 지표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신뢰지수는 109.3으로 예상치(114.8)를 밑돌았다. 중국의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역시 예상치(50.1)보다 낮은 49.6으로 떨어졌다.

시장 상황이 나빠지고 있지만 1970년대와 같은 극심한 경기 침체는 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각국을 덮친 물가 상승이 일시적 요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움츠렸던 소비가 급증하면서 생긴 한시적 영향이라는 것이다. 비키 레드우드 캐피털이코노믹스 수석전략가는 “코로나19발 인플레이션은 내년에 완화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1970년대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하지만 공급망 문제로 낮은 수준의 성장과 높은 물가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칼럼 피커링 베렌버그 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이 공급망 문제의 해결책을 찾지 못해 혼란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