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선호 1위 고노 '쓴잔'…실세들과 잘 지낸 기시다가 승리
9년전 아베 복귀 때 최대파벌이 영향력…스가는 작년에 짬짬이 선출
또 파벌이 좌우한 日총리 선출…민심 외면·양다리·눈치작전
차기 일본 총리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이번에도 민심보다는 파벌과 당내 역학 관계였다.

9년 만에 펼쳐진 예측 불허의 경쟁에서 자민당 실세들과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이 유권자 선호도 1위인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 개혁 담당상을 누르면서 낡은 질서를 재확인했다.

선거전 초기 당내 주요 파벌이 구성원의 자율적 판단에 따른 투표를 표방했으나 정작 투표에서는 파벌 논리가 힘을 발휘했다.

29일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기시다가 당선돼 내달 4일 출범하는 새 내각의 총리 자리를 '예약'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닛케이)과 TV도쿄가 23∼25일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6%가 차기 총리에 '어울리는 인물'로 고노를 지목했고 기시다는 17%의 선택을 받는 그친 것에 비춰보면 유권자의 지지와는 동떨어진 인물이 일본의 정부 수반이 되는 셈이다.

또 파벌이 좌우한 日총리 선출…민심 외면·양다리·눈치작전
일본은 유권자의 직접 투표가 아니라 국회를 장악한 다수파의 선택에 의해 총리를 결정하고 내각을 구성되는 의원 내각제를 택하고 있다.

일본 특유의 파벌 정치까지 중첩되면서 민의 반영은 더 어려웠다.

선거전 초기에는 주요 파벌이 지지 후보를 단일화하지 않았고 기시다파를 제외한 나머지 파벌은 자율 투표를 인정하는 분위기라서 주목받았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자민당 의석이 대폭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당내 위기감이 고조했고 파벌 논리로 당의 얼굴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 등이 영향을 미쳤다.

3선 이하의 자민당 중의원 의원 약 90명은 '당풍(黨風·당의 분위기나 기풍) 일신 모임'을 발족하고서 총재 선거 자율 투표와 젊은 인재 등용 등 당 쇄신을 요구하는 등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각 파벌이 지지 후보를 초기에 단일화하지 않은 것은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눈치작전이었다.

후보자 4명이 출마해 표가 분산되면서 당선자는 결선 투표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컸고 1차 투표는 당원·당우 표가 국회의원 표와 동일한 비중이라서 파벌이 특정 후보에 '올인'을 하더라도 해당 후보가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굳이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은 셈이다.

주요 파벌들은 1차 투표에서 지지할 후보를 복수로 설정하거나 자율 투표를 인정해 운신의 폭을 넓혔고 국회의원 표의 비중이 커진 결선에서 후보자가 2명으로 좁혀진 후 밀어주기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파벌이 좌우한 日총리 선출…민심 외면·양다리·눈치작전
예를 들어 최대 파벌인 호소다(細田)파(96명)는 1차 투표 때 원칙적으로 기시다 혹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에게 투표하되 자율 투표를 인정하기로 앞서 방침을 정한 바 있다.

결선 투표에서는 기시다와 다카이치 중 살아남은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방향으로 내부 단속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가 임박하자 결선에 대비해 파벌의 표를 단속하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기시다를 지지하는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은 전날 아베를 만나 결선 투표 때 '2·3위 연합'에 관해 협의했다.

아베와 아마리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까지 포함해 '3A'로 불리는 실세인데 사실상 고노 견제를 염두에 두고 움직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케시타(竹下)파 회장 대행인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은 "그룹으로서는 대부분이 기시다 지지로 정리됐다"고 총재 선거 하루 전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벌의 대응 방향을 밝혔다.

4명이 경쟁한 1차 투표에서는 기시다가 받은 의원 표는 고노보다 60표 많은 146표였는데 결선에서는 기시다의 의원표(249표)로 고노의 의원표보다 118표나 많았다.

결선으로 가면서 의원 표의 기시다 쏠림이 더 커진 것이다.

파벌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점이 늦춰졌을 뿐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에게 줄을 서듯 표를 몰아주는 행태가 반복된 셈이다.

신임 총리(총재 겸임)가 자신을 지지한 파벌에 각료나 당 간부 등 요직으로 답례할 것을 기대하고 거래를 시도하는 관행이 되풀이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총선을 앞둔 상황이라서 유권자가 선호하는 후보를 총재로 선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당내 역학 관계나 파벌 논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파벌 정치가 일본 총리를 판가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야당이던 자민당의 정권 탈환이 확실시되던 2012년 9월 실시된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파벌 우위에 힘입어 총재직에 복귀했다.

4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실시된 당시 선거 때 국회의원과 당원 등이 참여한 1차 투표에서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정무조사회장이 1위였으나 과반 득표에 실패해 2위인 아베와 결선 투표로 맞붙었다.

또 파벌이 좌우한 日총리 선출…민심 외면·양다리·눈치작전
국회의원에게만 투표권이 부여된 결선에서는 아베가 108표를 확보해 89표를 얻은 이시바를 눌렀다.

결선에서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町村)파(현 호소다파) 출신 후보가 아베 1명으로 압축된 상황이었고 이시바가 이에 대항하기는 어려웠다.

작년 9월 총재 선거 때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당시 관방장관을 뽑기로 주요 파벌 수장이 의견을 모으면서 정식 출마 선언도 하기 전에 '스가 총리'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당시에는 아베 정권과 대립각을 세운 이시바가 총리 후보로 급부상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 주요 파벌들이 무(無) 파벌인 스가를 밀어줬다.

아베 사의 표명 하루 전까지도 '총리 도전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공언한 스가는 파벌 영수들의 짬짜미 결과 '얼떨결'에 총리가 됐다.

1994년 일본이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를 도입하면서 파벌의 영향력이 약해지기는 했으나 이번 총재 선거는 권력 다툼이 본격화하는 시기에 파벌이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는 것 재확인한 정치 이벤트였다.

/연합뉴스